'천재 작가 이상' 아닌 인간 김해경을 회고하다

입력 2018-01-23 15:44   수정 2018-01-23 17:36

'천재 작가 이상' 아닌 인간 김해경을 회고하다
여동생 옥희 씨 등 가족사 기록한 책 '오빠 이상, 누이 옥희'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천재 작가 이상(李箱, 1910∼1937)의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품 세계를 떠나 식민지 시대를 힘겹게 살다간 인간 김해경(이상의 본명)의 삶을 가족과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회고하는 책이 나왔다.
'오빠 이상, 누이 옥희'(푸른역사)는 일간지 문학전문기자로 오래 일했으며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정철훈 작가가 이상에 관해 깊이 탐구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저자는 이상이 "나의 유일한 이해자"라고 지칭한 여동생 옥희 씨의 흔적을 찾아가는 데서 출발한다. 우연히 후배 문인으로부터 이상의 조카가 도봉구 창동에서 음식점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 그 식당 주인 문유성 씨가 이상이 아끼던 여동생 옥희 씨의 아들임을 확인한다.
오랫동안 어머니 옥희 씨를 모시고 산 문유성 씨 부부와의 대화를 토대로 저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상의 가족사를 꿰어맞추며 이상이 어린 시절부터 감내해야 했던 외로움과 집안의 장남으로서 짊어져야 했던 생계의 부담을 짐작한다.
특히 2∼4부는 이상이 1936년 9월 '중앙'지에 쓴 '동생 옥희 보아라- 세상 오빠들도 보시오'라는 편지글 형식의 글과 이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옥희 씨가 1962년 6월 '현대문학'에 쓴 회고기 '오빠 이상', 1964년 6월 '신동아'에 쓴 같은 제목의 회고기를 꼼꼼히 분석해 그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이상의 삶을 복원한다.
여기에 옥희 씨뿐만 아니라 이상과 함께 문학 동인 '구인회'로 활동한 조용만, 이상의 친구였던 문종혁 씨의 회고기와 이상이 직접 쓴 수필과 소설 작품들을 훑어가며 그가 현실의 삶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았는지, 일상에서의 풍모는 어떠했는지 등을 살펴본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상은 흔히 알려진 대로 여자관계가 복잡했거나 방탕한 삶을 산 자유로운 예술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세 살 때 친부모, 가족과 떨어져 큰아버지(백부)의 집에 양자 형식으로 들어간 이상은 백부가 새로 들인 후처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했고, 이런 환경으로 일찍부터 우울과 외로움을 안고 자랄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여러 방면에서 천재성을 보였고 그림에 특별한 흥미와 재능을 보였지만, 백부의 강권으로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총독부에서 운영하는 경성고등공업 건축과에 유일한 조선인으로 들어가 수석으로 졸업한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졸업하자마자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에서 일하기 시작해 어려운 계산을 척척 해내고 건축 도면 설계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지만, 직장 상사인 일본인 관리의 괴롭힘 등으로 직장을 그만둔다.
그 무렵 결핵에 걸려 각혈을 하는 등 몸이 쇠약해지고, 요양차 떠난 황해도 배천 온천에서 기생 '금홍'을 만나 서울로 돌아온다. 생활고를 타계하기 위한 방편으로 금홍과 다방 '제비'를 열지만 운영이 잘되지 않고 이후 금홍도 떠나는 등 이상의 삶은 점점 고달파진다. 그러면서도 그는 늘 부모와 동생들 걱정을 했다고 한다.
연인과 함께 만주행을 택해 가난한 집안을 벗어나고 오빠와도 영영 작별하게 된 옥희 씨는 오빠를 이렇게 회고한다.
"바깥일은 집에 와서 절대 이야기 않던 오빠도 부모에 대한 생각은 끔찍이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살아 계신 어머니도 큰오빠가 어머니에게 늘 공손했고 뭘 못 해드려서 애태우곤 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편안히 모시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던 큰오빠를 어머니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계십니다."
저자는 "퇴폐와 예술지상주의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오르게 하는 이상이지만 가족들이 기억하는 이상은 그와 달랐다.", "김옥희는 천재 이상에게 따라붙는 비운의 수식어를 떼어내고 평범하고도 효성 깊은 인간 김해경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고 말
한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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