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목도리·장갑·마스크로 중무장해도 속수무책
밤사이 서울시 수도 계량기 동파 신고 8건 접수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24일 서울에 들이닥친 '북극 한파'는 출근길 시민들의 몸도 마음도 얼렸다.
목도리, 넥워머, 부츠, 장갑, 마스크, 핫팩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한용품을 챙겨 나왔지만 시민들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찬바람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히말라야 등반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두꺼운 아웃도어 외투를 껴입고는 그 무게와 부피를 견디기 어렵다는 듯 뒤뚱뒤뚱 걸었다.
버스와 지하철에서는 겹겹이 입은 옷 때문에 몸집이 커진 사람들이 한 번에 내리다가 서로 밀쳐 문에 부딪히는 바람에 눈을 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직장인들은 입김을 쏟아내며 버스 도착시각을 알려주는 전광판을 응시하거나, 주문을 외우듯 "춥다"고 중얼거리며 몸을 부산하게 움직였다.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중구 을지로로 출근하는 신모(30)씨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들숨에 콧물이 얼고 날숨에 녹는 기현상을 체험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영등포구청역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강모(69)씨는 "어제보다 바람은 덜 불어서 괜찮지만, 기온이 너무 낮아서인지 냉동고에 들어온 기분"이라며 "버스를 기다린 지 5분밖에 안 됐는데 슬슬 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진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당산역 근처 한 버스정류장에는 잠시나마 추위를 잊으려 따뜻한 음료나 핫팩을 쥔 사람도 많았다. 택시를 잡으려던 한 남성은 '왜 이렇게 안 와'라며 추위를 이기려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시민들은 집에서 역까지 오는 것도 고통스러웠는데 또 역에서 직장까지 걸어갈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고, 지하철 입구를 나서자마자 무언가에 쫓기듯 종종걸음을 쳤다.
가죽구두를 신고 온 직장인 최모(38)씨는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중인데 여기까지 걸어올 때 발이 시려 혼났다"며 "지하철 내려서도 꽤 걸어야 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린 박모(38)씨는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공기가 다른 게 느껴졌다"며 "서울이 이렇게 추웠던 적이 없던 것 같다. 이런 날에는 방학이 있는 학생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지하철 입구를 나서자마자 담배를 주머니에서 꺼내려던 한 중년 남성은 "어휴 날씨가" 하며 도로 집어넣었다. 흰색 패딩에 목도리, 털모자까지 중무장한 30대 여성은 바람이 한차례 강하게 불자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길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는 아르바이트생들, 수레를 끌고 다니며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 배달원들과 환경미화원들은 추위로 얼굴은 파랗게 질렸을지언정 묵묵히 일해야만 했다.
전단을 나눠주던 60대 여성은 "이렇게 추울 줄 몰랐다"라면서 "이러다 몸 상하면 알바비가 의미가 없는데 괜히 나온 것 같다. 그나마 다른 아줌마한테서 핫팩을 하나 빌려서 다행이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강남구 삼성역 인근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A씨는 길을 쓸다 말고 장갑을 낀 두 손을 부딪쳐 손뼉을 쳤다. A씨는 "이렇게 하면 손에서 열이 나서 견딜 만하다"고 말했다.
한파가 찾아오면서 전날 오후 5시부터 이날 오전 5시까지 서울시에는 아파트 5건, 단독주택 1건, 연립주택 1건, 상가 1건 등이 총 8건의 수도 계량기 동파 사고가 접수됐다.
서울의 오전 7시 기온은 -15.9도다. 서울에는 전날 오후 9시를 기해 2016년 1월 23일 이후 2년 만에 처음으로 한파경보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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