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지난해 역외 조세회피 자료 '파라다이스 페이퍼스'(Paradise Papers) 유출로 전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킨 영국령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Appleby)가 테러 조직과 연루된 은행을 위해 일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애플비는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영국령 케이맨 제도에 있는 FBME 은행의 지주회사를 2004년부터 고객으로 두고 대리인 역할을 했다.
FBME는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반(FinCEN)이 2014년 공개한 조사결과에서 테러 조직과 연루돼 있고 돈세탁 우려가 있는 금융기관으로 지목한 곳으로, 지난해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 거래가 금지됐다.
FinCEN은 당시 "FBME는 고객들이 돈세탁, 테러 자금조달, 초국가적 조직범죄, 사기, 제재 회피를 비롯해 기타 불법 활동을 국제적으로 또 미국 금융시스템을 통해 가능하도록 하는 데 이용됐다"고 밝혔다.
FinCEN는 FBME의 한 고객은 국제 테러조직인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측의 자금 제공자로부터 수십만 달러의 예치금을 받아갔으며, FBME에 예금이 있는 주요 초국가 조직범죄계 인사의 한 재정 고문은 이 은행 소유주와 관계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FinCEN은 또 이 은행 고객 가운데 최소한 한 곳은 시리아 과학연구개발센터(SSRC)의 유령회사라고 주장했다.
SSRC는 1970년대부터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개발을 주도한 것으로 의심받는 곳이다. 2005년 조지 W.부시 미국 행정부는 시리아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들어 SSRC를 상대로 제재를 가한 바 있다.
애플비는 FinCEN의 발표 후 17개월만인 2015년 12월 FBME의 대리인 역할을 철회했으며, 이에 따라 FBME도 케이맨 제도에서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FBME는 FinCEN이 제기한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애플비는 FBME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기를 거부했다.
2016년 4월 사상 최대 규모의 역외 조세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를 폭로했던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지난해 11월 애플비의 1950∼2016년 기록을 담은 내부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파라다이스 페이퍼스'(Paradise Papers)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각국 정상과 정치인 120여 명, 배우 등 유명인이 대거 포함되거나 연루돼 파문을 일으켰다.
애플비는 버뮤다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1898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법률회사다.
버뮤다에 있는 본사 이외에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케이맨 제도, 세이셸 등 세계 주요 조세회피처 11곳에 지사를 두고 각국 부호와 다국적 거대기업 등의 페이퍼 컴퍼니 설립 등을 통한 조세회피·재산은닉 등을 지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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