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북촌·익선동 한옥 지켜낸 정세권 기린다

입력 2018-01-24 11:49   수정 2018-01-29 10:15

일제강점기 북촌·익선동 한옥 지켜낸 정세권 기린다
서울시, 기념사업 추진키로…한옥 투어·전시 개최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서울 도심에서 고즈넉한 한옥의 멋을 느낄 수 있어 인기 관광지로 떠오른 북촌.
그러나 북촌이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 사대문 안에 일식 주택을 대량으로 건설하려던 일제에 맞서 우리 한옥을 지키려고 조성한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북촌은 물론 익선동, 혜화동 등 오늘날 서울의 대표적 한옥 밀집 지역을 만든 '조선 건축왕' 정세권 선생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서울시가 추진한다.
서울시는 이달 26일 서울시청에서 한국부동산개발협회, 대한건설협회 서울특별시회, 국사편찬위원회, 종로구와 '정세권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공동협력협약'을 맺는다고 24일 밝혔다.
그간 국가나 서울시 차원에서 정세권 기념사업이 추진된 적은 없었다.
1888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기농 정세권 선생은 1930년대 조선물산장려회, 신간회 활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사업가다.
1919년 종합 건축사 '건양사'를 설립하고서 지금의 북촌 가회동, 계동, 삼청동, 익선동 일대 땅을 대규모로 사들였다. 여기에 중소형 한옥만으로 이뤄진 주택지구를 조성해 서민들에게 저렴하게 분양했다.
이런 한옥단지 때문에 남촌을 장악한 일본인들이 북촌까지는 파고들지 못했다.
한옥보다는 서양식 문화주택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거셀 때 정세권은 "정원이 있고,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한옥이야말로 문화주택"이라고 주장하며 한옥 건축을 고집했다. 일식 주택을 건설하라는 조선총독부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정세권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디벨로퍼(developer·부동산 개발업자)로 평가받는다. 이광수의 소설 '무정'에는 정세권을 모델로 하는 건축왕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옥 지구를 조성하는 동시에 정세권은 1931년 조선물산장려회를 낙원동 300번지 건양사 사옥에 입주시키고 적극 지원했다. 1935년부터는 조선어학회 운영자금을 대면서 사전 편찬을 뒷받침했다.
그의 사업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면서 기울기 시작한다. 특히 뚝섬 일대 사유지 약 3만5천여평을 일제에 강탈당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아들 정남식 씨는 인터뷰에서 "총독부가 지속적으로 아버지에게 일식 주택을 건설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아버지는 일본 주택은 절대 지을 수 없다고 해 1940년부터 해방 때까지 주택사업에 손을 대지 않으셨다"고 회고했다.
6·25 전쟁 발발 이후 고향인 고성으로 낙향한 정세권은 1965년 그곳에서 눈을 감는다.
서울시는 토론회, 전시회 등 정세권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개최하고, 투어·전시를 상설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우선 다음 달 27일 북촌에서 정세권을 주제로 한 한옥 투어와 토론회를 연다. 내년에는 3·1 운동 100주년과 연계한 기념전시회를 개최한다.
cho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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