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지난해 12월 11일 러시아 당국은 러시아의 국가 차원의 도핑 스캔들을 폭로한 내부고발자 그리고리 로드첸코프를 마약밀매죄로 기소했다.
러시아가 2016년 리우 올림픽(육상)에 이어 올해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또다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출전 자격을 박탈당한 것은 러시아 반도핑기구 모스크바 실험실 소장을 지낸 로드첸코프 박사의 증언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과거 10년간 러시아 반도핑기구 모스크바 실험실 소장을 지낸 로드첸코프 박사는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2015년 러시아 측의 반도핑 규정 위반 사실을 거론하며 러시아 육상팀의 리우 올림픽 출전 금지를 IOC에 건의한 후 생명의 위협을 느껴 러시아를 탈출했다.
당시 크렘린 대통령실의 한 친구로부터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이 그를 살해한 후 자살로 위장할 것이라는 귀띔을 받고 부랴부랴 관광비자로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에 도착한 직후 로드첸코프는 그의 실험실 동료였던 니키타 카마에프 전 러시아 반도핑기구 소장이 의문의 죽임을 당한 사실을 전해 들었다.
카마에프는 러시아 정부 차원의 도핑 프로그램에 대한 폭로성 책을 집필 중이었고 그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닌 것은 당연한 추론이었다.
동료의 죽음에 위협을 느낀 로드첸코프는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그가 행한 도핑 결과 조작 등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털어놓기 시작했다.
소치 올림픽 기간 그는 밤중에 이른바 3중 칵테일 약물을 복용한 러시아 선수들의 소변 샘플을 FSB가 가져온 다른 깨끗한 샘플과 바꿔치기했고 당연히 결과는 아무 이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소치 대회에서 금메달 13개를 포함해 모두 33개의 메달을 땄는데 로드첸코프는 이중 절반이 자신이 벌인 도핑 작업의 결과라고 밝혔다.
로드첸코프의 증언과 함께 독립기구의 조사를 거쳐 러시아는 4개의 금메달을 박탈당했으며 러시아 올림픽팀과 올림픽 관리들의 평창 올림픽 출전이 금지됐다.
또 안현수 등 도핑 스캔들에 연루되지 않은 선수들의 개인 자격 출전이 추가로 금지된 것은 지난해 11월 로드첸코프가 WADA에 넘긴 실험실 자료가 중요한 근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드첸코프는 출전금지 처분을 받은 러시아 선수들의 소청으로 열리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청문회에도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러시아 반도핑실험실 소장에서 조국의 부정에 대한 내부고발자로 변신한 로드첸코프의 여정은 앞서 뉴욕타임스에 의해 자세히 소개됐고 넷플릭스에 의해 다큐멘터리(이카루스)로 제작돼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 후보작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로드첸코프가 모든 면에서 러시아 당국의 최대 공적으로 지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사종합지 애틀랜틱은 23일 러시아 당국이 로드첸코프를 제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측이 12월 11일 그를 마약밀매죄로 기소한 것은 로드첸코프가 영구 체류 비자를 얻기 위해 미 이민 당국과 만난 시점을 의도적으로 겨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약밀매를 적용해 미 당국으로부터 이민 비자를 얻기 힘들게 만들고 범죄인 인도절차를 거쳐 그를 잡아오겠다는 계획이다. 러시아 법원은 이미 로드첸코프에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러시아 스포츠계에서는 그를 총살하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으며 아직 러시아에 남아있는 그의 부인과 자녀들은 재산과 여권을 압수당한 상태이다.
로드첸코프는 현재 연방증인보호프로그램의 적용하에 미국 내 모처에 머물면서 미국 내에서 활동 중인 러시아 요원들의 암살 공작을 피하고 있다.
로드첸코프는 러시아 측의 암살 기도를 우려해 스위스에서 열리는 CAS 청문회에도 직접 출석하지 않고 원격 화상을 통해 증언할 예정이다.
로드첸코프의 변호인인 짐 월든은 "러시아는 그를 침묵시키기 위해 그들의 권력을 이용해 무엇이든 할 것"이라면서 "모든 조사가 끝난 뒤에도 그는 여생을 조심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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