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해상왕 장보고의 청해진 유적지 '장도'

입력 2018-02-09 08:01  

[연합이매진] 해상왕 장보고의 청해진 유적지 '장도'

(완도=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해남에서 완도대교를 건너 13번 국도를 따라 11㎞ 달려가면 통일신라 때 동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한 해상왕 장보고(張保皐:?∼841)의 청해진 유적지에 닿는다. 완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군인으로 활약하다 해적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리는 신라인들을 지켜 주기 위해 귀국하여 흥덕왕 3년(828)에 청해진을 설치했다.



해적을 소탕한 이후 당과 신라, 일본을 잇는 동북아 해상무역을 장악했고, 아라비아 상인들로부터 이슬람 도자기, 유리제품 등을 신라와 일본에 공급하기도 했다. 해상왕으로 불리는 장보고는 신라 왕실의 왕위 계승 분쟁에 휘말려 자객 염장에 의해 살해됐다. 이후 청해진은 폐쇄됐고, 완도 사람도 공도(空島) 정책으로 모두 섬에서 쫓겨나 고려 충정왕 3년(1351)까지 500년 동안 섬에 들어와 살 수 없었다.
청해진 유적은 장좌리와 죽청리, 대야리 일대에 퍼져 있는데, 1991년부터 2001년까지 10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 시대의 문양이 새겨진 기와, 동아시아 해상교류를 알려주는 중국의 자기, 토기 등 다양한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됐다.



장좌리 마을 앞바다의 장도는 전복을 엎어놓은 형상의 둥글넓적한 섬으로, 청해진 본영이다. 길이 150m의 아치형 목교를 건너 청해진 유적(사적 제308호)에 들어서면 청해진의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데 30∼40분이면 충분하다. 외성문 바로 앞에는 청해진 1만 군사들의 식수원이었던 직경 1.5m, 깊이 3.4m의 우물이 있다. 2000년에 발견된 이 우물은 해수면보다 낮아 갈수기에도 물이 넘치고 지금도 맑은 물이 솟아난다.
흙을 다져 시루떡처럼 쌓은 성벽의 첫 관문인 외성문을 들어서면 내성문과 고대 등 복원한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섬 지형을 이용, 능선을 따라 쌓은 판축토성은 총 둘레 890m, 최고높이 2.5m에 이른다. 판축층이 18겹일 정도로 견고한데 서산 해미읍성처럼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이른바 '공사실명제'를 실시했다고 전한다.
발걸음을 성벽의 서치로 옮긴다. 성곽길에선 동서남북의 다도해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성곽의 일부를 돌출시켜 성벽에 가까이 접근한 적을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치(雉)는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섬 안에는 서북치·동북치·동남치·서치 등 4개의 치가 있다. 섬 정상엔 해상왕의 얼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엔 동백나무 숲에 둘러싸인 사당에서 풍어와 해상 안전을 비는 당제(堂祭·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를 지내고 있다. 사당 옆에는 중국 법화원에서 발견된 빗살무늬 맷돌의 문양과 똑같은 맷돌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남쪽 성벽의 중간지점에 있는 망루 고대(高臺)에 서면 내성문과 외성문, 그 너머 고금도와 강진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망루에 앉아 군사들을 호령하던 장보고를 떠올리며 옛 청해진의 위용을 생각해본다. 성벽 아래엔 통나무 목책(木柵)이 약 1천200년 세월의 더께만큼 닳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1959년 태풍 사라가 지날 때 장도의 앞바다가 뒤집히면서 발견됐는데 장도의 남쪽에서 서북쪽 해안에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높이 3∼4m, 지름 30㎝ 내외의 소나무 기둥을 촘촘히 세워 만든 방어용 나무 울타리다.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만 보이는데 밀물 때 배가 접근하면 목책이 암초 구실을 하는 것이다.



◇ 1천200년 역사를 보여주는 장보고기념관

장도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장보고기념관은 8∼9세기 동북아 해상권을 장악한 장보고의 실체와 업적, 청해진의 흔적을 만나는 공간이다. 1층 중앙홀에는 날렵하고 파도에 강하며 암초에 의한 부분 파손에도 계속 항해를 할 수 있는 장보고 무역선(축적 1/4)이 전시돼 있다. 뿌리·생성·제국·항해 등 4개의 존으로 구성된 2층의 상설전시실은 장보고의 삶과 동북아 해상무역 활동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한·중·일 삼국의 고고학적 자료와 문헌기록 등이 전시돼 있다. 갈대를 상징하는 LED 조명을 헤치면서 장보고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전시실에는 장도의 목책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김유숙 문화관광해설사는 "동북아시아 해상무역을 장악하며 한 시대를 호령했던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며 "모형과 영상, 정보검색, 관람객의 흥미와 참여를 유도하는 전시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장보고기념관을 나오자 높이 15.5m의 청동상이 되어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에는 '해상교역 물품' 목록을 든 해상왕 장보고가 눈에 들어온다.



▶ 장보고기념관 관람 정보
[관람 시간] 동절기(11∼2월) 09:00∼17:00, 하절기(3∼10월) 09:00∼18:00
[휴관]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입장료] 어른 1천원, 청소년·군인 700원, 어린이 500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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