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크지만 실망보다 아시아 새 강자 부상에 자부심…"다음엔 꼭"
부총리·장관들, 시민들과 대규모 야외응원…한국인 교민들도 "베트남 이겨라"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베트남 꼬렌(화이팅)! 베트남 보딕(무적)!"
베트남 전역이 27일 붉은 물결과 함성으로 뒤덮였다.
이날 오후 중국 창저우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23세 이하) 챔피언십 베트남과 우즈베키스탄의 결승전에 맞춰 수도 하노이와 최대 도시 호찌민 등 베트남 곳곳에서 실내외 가릴 것 없는 응원전이 펼쳐졌다.
시민들은 중앙의 노란색 별에 바탕은 붉은색인 베트남 국기 '금성홍기'가 그려진 머리띠나 티셔츠를 착용하고 한 손에는 국기를 흔들며 한마음으로 '베트남'을 외쳤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와 흡사했다.
스포츠 경기를 놓고 인구 9천500만 명의 베트남이 이처럼 들썩거린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동남아 축구역사상 처음으로 '4강 신화'를 이룬 데 이어 우승까지 다투자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것이다.
박 감독과 선수들 사진과 함께 태극기와 금성홍기가 그려진 스티커를 유리창에 붙이고 운행하는 택시와 우승을 기원하는 붉은 머리띠를 두른 운전기사들이 하노이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하노이시는 호안끼엠, 미딘 국립경기장, 호아빈 공원 등 주요 공공장소에 약 15개의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을 설치해 결승전을 생중계하며 시민들의 거리 응원전을 지원했다. 호찌민의 주요 거리에도 대형 LED 모니터가 설치됐다.
미딘 국립경기장에는 이례적으로 부 득 담 베트남 부총리와 장관 10여 명 등 각료들이 대거 나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중계되는 경기를 주시하며 시민들과 함께 응원했다. 경기 시작 약 5시간 전부터 붉은색 옷차림을 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길게 이어졌다.
경기장 밖에서는 티셔츠와 국기를 파는 상인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곳에만 4만 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전후반 1-1 무승부에 연장까지 진행되는 동안 환호와 탄성이 쉴 새 없이 교차했다. 베트남팀이 연장전 막바지에 한 골을 내줘 우승컵을 차지하지 못해 아쉬움을 컸지만 패배했다는 실망보다는 '변방'에 머물던 베트남 축구가 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했다는 자부심이 더 커 보였다.
응우옌 번 홍(30)은 연합뉴스에 "베트남 국민으로서 우리 팀이 자랑스럽다"며 "결승전 결과와 관계없이 강력한 실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 중심에는 '베트남의 거스 히딩크', '국민 영웅', '국민 오빠'로 떠오른 박항서 감독이 있었다. 베트남 축구 사령탑을 맡은 지 3개월여 만에 기적으로 불릴 정도의 성적을 낸 것이다.
부임 당시 "젊고, 이기고, 강한 축구를 통해 베트남 대표팀을 아시아 정상팀으로 만들겠다"고 밝힌 박 감독의 포부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베트남 국민은 열광하고 있다.
도 딘 피(22)는 "박 감독이 효율적인 팀 운영으로 결승까지 이끌어 왔다"며 "박 감독이 대표팀을 계속 이끌어 국제무대에서 계속 좋은 성적을 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미딘 국립경기장 응원전에는 한국인 교민 400∼500명과 이혁 주베트남 한국대사 등도 참가해 태극기와 금성홍기를 함께 흔들며 베트남팀의 승리를 위해 목청을 높였다.
하노이한인회가 응원전 참가 의사를 전달하자 베트남 정부와 베트남축구협회가 흔쾌히 받아들이며 VIP석 옆에 우리 교민들을 위한 자리를 특별 배정했다. 배정 좌석도 애초 250석에서 갑절로 늘었다.
윤상호(56) 하노이한인회장은 "박항서 감독이 드높인 국위를 공고히 하고 베트남과의 우호 관계를 더욱 다지기 위해 한국·베트남 통합 응원전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현지 교민의 체육동호회인 하노이축구회의 김성곤(46) 회장은 "베트남이 그동안 한국 축구를 부러워했는데 이번에 대표팀의 뛰어난 성적으로 자신감을 느끼게 됐다"며 "우리 입장에선 박 감독이 민간 스포츠 외교관 역할을 한 것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양국 간 경제와 체육, 문화 교류 확대 등 여러 방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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