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서 '넌 나치야' 비판은 유죄?…'표현의 자유' 넘나들기

입력 2018-01-28 09:15  

독일서 '넌 나치야' 비판은 유죄?…'표현의 자유' 넘나들기
경찰 상대로 '나치'라고 표현한 미국 여성 모욕죄로 제소 위기
정치적 논쟁·풍자에선 허용…상대 '나치' 규정 자체가 파시즘적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에서 상대방을 '나치'라고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민감한 일이다.
상대방이 극우적인 행동을 했더라도 표현의 자유영역을 넘는 것으로 판단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 정권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을 감안하면, '나치'라는 표현은 일반적인 욕설 수준을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을 사용해 상대방을 규정짓는 것 자체에 파시즘의 그림자가 깔린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를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또한, 정치·문화의 영역에서는 논쟁과 풍자의 한 요소로 상당히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
28일(현지시간)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49세의 한 미국인 여성이 최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서 경찰과 입씨름 도중 '나치'라는 단어를 내뱉었다가 형사소송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경찰은 이 여성이 언쟁 과정에서 욕설을 하면서 "독일 나치 경찰"이라고 말했다며 제소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나치'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경찰은 이 여성에게 모욕죄를 적용해 형사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며칠 후 이 여성이 미국 언론인 허핑턴포스트에 이번 일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으면서 상황이 악화되는 분위기다.
독일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20년 가까이 히틀러와 괴벨스, 게슈타포, 집단수용소 등 나치와 관련된 단어를 상대방을 비판할 때 비유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동·서독 분단 시절 서독의 한 신문은 동독의 발터 울브리히트 서기장을 감시자로 가진 집단수용소로 비유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표현은 점점 자취를 감추기 시작해 현재 독일 사회에서는 이 같은 비유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분위기다.



토르스텐 아이츠 등의 언어학자들은 나치와 관련된 언어를 금기시해야 할뿐만 아니라, 나치가 학살과 침략 구실을 위해 자주 사용해 오염된 단어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만하임대학의 언어학자인 하이드룬 캠퍼는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상대방을 나치라고 들먹이는 것은 전체주의 독재의 범위, 즉 하나의 현실에 따른다는 것"이라며 "이는 전체주의 국가 형태 아래에서 취해지는 억압을 상기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캠퍼는 "물론, 채찍 자국과 같은 2음절의 '나치'라는 단어는 누군가를 민족주의자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욱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일상적으로 나치와 관련된 표현을 동원한 공격적 발언이 문제시될 수 있는 이유는 형법상 모욕죄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치의 야만적인 행위로 인해 언어 공격을 당한 상대방이 단순히 비판을 당한 것을 넘어 심각한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나치'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이를 통해 상대방이 상당한 모욕을 느낀다면 법적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셈이다.
정치권에서도 상대방을 나치와 관련된 용어로 공격하는 것을 놓고 소송전까지 전개됐다.
극우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알리체 바이델 공동원내대표는 지난 4월 방송 NDR의 한 프로그램에서 자신을 '나치 잡년(Nazi-Schlampe)'이라고 일컫자 방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러나, 함부르크 법원은 전체적인 맥락상 풍자로 판단한다면서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녹색당 정치인인 볼커 벡은 극우 정치인이 자신을 나치 준군사 조직원으로 표현한 것을 놓고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은 격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표현으로 인정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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