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문학 대가 김욱동 교수, 국제저명학술지에 논문 기고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우리말로 번역한 외화 제목의 상당 부분은 오역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역된 제목은 관객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줄 뿐만 아니라 영화 내용을 호도할 수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영미문학 번역의 대가로 불리는 김욱동(70) 서강대 명예교수 및 울산과학기술원 초빙교수는 지난해 12월 발행된 국제저명학술지 '저널 바벨'(Revue Babel) 겨울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저널 바벨은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번역가협회(FIT)가 발행하는 세계적인 학술지다. 김 교수는 '앵무새 죽이기' '그리스인 조르바' '위대한 개츠비' '호밀밭의 파수꾼' 등 30권이 넘는 영미문학을 번역했다.
김 교수는 '외국영화의 한국어 제목 오역'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4개 항목에 걸쳐 오역 사례를 분석했다.
우선 동음이의어 혹은 동철이의어(철자는 같지만, 뜻은 다른 단어)에 따른 대표적인 오역 사례로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를 들었다.
김 교수는 이 영화에서 'Society'는 사회라는 뜻이 아니라 클럽 혹은 동아리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고등학생 교사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작고한 시인들의 작품을 읽고 연구하는 동아리 모임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따라서 '죽은 시인의 클럽(동아리)' 정도로 번역하는 게 적합하다고 제시했다.
1984년 작 '애정의 조건'(Terms of Endearment)도 '애정의 시간'이 더 올바른 제목이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Terms'는 조건·조항·기간 등 다양한 의미가 있는데, 영화 내용을 보면 조건이 아니라 기간을 가리키는 시간적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도 '사랑과 추억의 나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영어의 속어나 구어 표현을 제대로 몰라 글자 그대로 번역한 제목도 많다. 말론 브랜도가 연출·주연한 1962년 작 '애꾸눈 잭'(One-Eyed Jacks)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한쪽 눈을 한 잭'(11번패)은 포커 게임에서 자주 와일드카드로 사용되는 데서 유래한 구어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며 "이 작품에서 애꾸눈은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안 제목으로는 '무소불위의 사나이' 또는 '만능의 사나이'를 제안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역시 오역 사례로 꼽힌다.
이 작품의 원제는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는 번역하는 과정에서 상실하는 그 무엇'(Translation is what gets lost in translation)이라는 유명한 말에서 따왔다. 번역의 불가능성이나 문화 이해의 어려움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 만큼 제목도 '번역에서 길 잃어' 정도가 적합하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문화적 특성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제목도 많다. '여왕 마고'(Queen Margot)는 '마고 왕비'로,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는 '어린 군주'가 더 정확하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queen'이라는 단어는 여왕보다 왕비로 더 자주 사용되며, 'prince'도 왕자가 아니라 공국이나 후국·소국의 우두머리, 즉 군주를 뜻한다.
고유명사를 일반명사로 착각해 잘못 번역하는 사례도 제시됐다. '늑대와 함께 춤을'(Dancing with Wolves)은 주인공의 특정 행위를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은 주인공 인디언의 이름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도 고민을 상담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소년이 사용하는 아이디 또는 별명인 만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소년' 정도가 더 어울린다는 것이 김 교수의 제안이다.
김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우리말로 뜻을 번역한 외화 제목의 90% 이상이 오역"이라면서 "제목이 잘못되면 관객들은 영화 내용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영화를 보게 되고, 영화의 본질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외화 수입사들은 한국 관객이 이해하기 쉽게 임의대로 제목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원제를 발음이 나는 대로 옮기기도 한다. 현재 상영 중인 '메이즈 러너:데스큐어' '커뮤터' '인시디어스4:라스트 키' 등도 음역한 제목이다.
영화계 관계자는 "외화 제목을 우리말로 해석해 옮길 경우 원작의 느낌이 달라지는 경우 많다"면서 "요즘에는 원제를 발음 나는 대로 옮기는 추세"라고 전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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