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망명 前 모스크바반도핑실험실 소장, 獨방송 다큐서 주장
"모든 명령 대통령에게서 나와"…크렘린궁 "증거 없는 중상모략"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선수들이 금지약물을 복용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전(前) 모스크바반도핑실험실 소장 그리고리 로드첸코프가 주장했다.
30일(현지시간) 현지 일간 '베도모스티' 등에 따르면 로드첸코프는 독일 공영방송 ARD가 만든 러시아 도핑 관련 새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이같이 증언했다.
로드첸코프는 얼굴 없이 목소리만 녹음된 ARD 인터뷰에서 "(소치 올림픽 당시) 스포츠부 장관이었던 비탈리 무트코(현 부총리)가 푸틴 대통령에게 선수들의 도핑에 대해 보고했다"면서 "내가 스포츠부 차관 유리 나고르니흐에게 보고했고 그가 무트코 장관에게 정보를 전달했으며 무트코가 다시 푸틴에게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는 푸틴이 무트코를 통해 전면적이고 구체적인 (도핑) 세부내용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무트코가 내게 개인적으로 푸틴이 나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모든 명령은 대통령에게서 나왔다. 그만이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에 그러한 과제(도핑 샘플 바꿔치기 등)를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로드첸코프는 나고르니흐 차관이 2014년 소치 올림픽에 앞서 대회 기간에 우크라이나 여자 바이애슬론 선수 비타 세메렌코의 도핑 샘플을 오염된 샘플로 바꿔치기할 것을 요구한 사실도 폭로했다.
세메렌코가 러시아 선수들을 이기지 못하도록 도핑 샘플 교체를 요구했지만 결국 자신의 설득으로 실행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또 자신이 만들어 선수들이 마신 '도핑 칵테일'의 효능을 설명하면서 "100m 달리기 선수가 1m 정도 뒤지면 칵테일이 효능을 발휘한다"며 "칵테일로 은메달 대신 금메달을 딸 수 있다"고 소개했다.
로드첸코프는 러시아의 국가적 도핑 지원 시스템이 옛 소련이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지난 1980년부터 시작됐다고 전했다.
그는 "나는 러시아 스포츠와 도핑 관리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지를 보여줬다.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 누군가가 이를 밝혀야 했다"면서 "후회하지 않으며 부끄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10년간 모스크바반도핑실험실 소장을 지낸 로드첸코프 박사는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2015년 러시아 측의 반도핑 규정 위반 사실을 거론하며 러시아 육상팀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 금지를 국제올림픽(IOC)에 건의한 후 생명의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탈출했다.
로드첸코프는 이후 미국에서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그가 행한 도핑 결과 조작 등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소치 올림픽 기간 중 이른바 도핑 칵테일을 복용한 러시아 선수들의 소변 샘플을 FSB가 가져온 다른 깨끗한 샘플과 바꿔치기한 사실도 털어놨다.
리우 올림픽 개막에 앞서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펴낸, 러시아 도핑에 관한 맥라렌 보고서도 상당 부분 로드첸코프의 증언에 기초한 것으로 알려졌다.
맥라렌 보고서로 리우 올림픽 육상과 역도 종목에 러시아 선수들의 참가가 금지됐고 패럴림픽에는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이 전면 금지됐다.
IOC는 앞서 지난해 12월 소치올림픽에서 자행된 러시아 선수단의 조직적인 도핑 조작 사건을 이유로 러시아 국가 선수단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불허하고 개인 자격 출전만 허용했다.
현재 연방증인보호프로그램의 적용하에 미국 내 모처에 머물고 있는 로드첸코프는 평창 출전금지 처분을 받은 러시아 선수들의 소청으로 열리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청문회에도 원격 화상 연결로 증언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로드첸코프의 ARD 인터뷰 내용과 관련 "일말의 증거도, 증거나 암시로
간주할 만한 일말의 표시도 없는 또 다른 중상모략"이라고 일축했다.
푸틴 대통령도 이날 3월 대선 업무 대리인들과의 면담에서 "어떤 경우에도 국제 스포츠와 올림픽 운동을 어떤 더러운 '정치적
요리'의 뒷마당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조직적 도핑에 대한 비판과 제재가 러시아의 국가적 권위를 실추시키고 국민의 단합을 해치려는 서방의 정치 음모라는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푸틴은 그러면서도 국제 스포츠 기구들과의 교류는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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