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당 100년] ⑧ 반병률 교수 "독립운동사 전기 마련"(끝)

입력 2018-02-01 06:30   수정 2018-02-17 10:49

[한인사회당 100년] ⑧ 반병률 교수 "독립운동사 전기 마련"(끝)
김알렉산드라 존재 알린 주역…"이동휘는 가장 순수했던 독립투사"
"조국 분단될 줄 누가 알았겠나…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재평가해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한인사회당은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이라는 역사적 의미 말고도 우리나라 독립운동 진영이 러시아혁명 세력과 연대하며 국제적인 조직으로 발돋움하는 동시에 그동안 명망가 중심으로 이뤄진 조직에서 탈피해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하며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반병률(62)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는 한인사회당을 비롯한 초기 사회주의 독립운동사의 전문가다. 초대 위원장을 맡은 이동휘의 일대기를 저술했고 창당의 산파역인 김알렉산드라에 관한 논문을 1989년 발표해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한인사회당 창당 100년을 맞아 지난달 31일 서울 성북구 석관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내분과 코민테른의 개입 등으로 한인사회당이 4년여 만에 해체되는 비운을 맞지만 이념의 잣대나 오늘날의 기준을 들이대며 평가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한양대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한 반 교수는 1986년 창립된 역사문제연구소에 몸담았으며 미국 하와이대에 유학해 1996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북아역사재단 제2연구실장과 국제한국사학회 상임대표를 역임했고 '우즈베키스탄 한인의 정체성 연구', '1920년대 전반 만주·러시아 지역 항일무장투쟁', '국외 3·1운동', '여명기 민족운동의 순교자들', '홍범도 장군-자서전 홍범도 일지와 항일무장투쟁', '이승만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의 저서를 펴냈다.
다음은 반 교수와의 일문일답.
-- 존경하는 인물로 이동휘 선생을 꼽는다고 들었다.
▲ 가장 순수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헌신한 인물이 그리 많지 않다. 예컨대 이승만은 정치적 야심을 품었다. 이동휘 같은 인물 덕분에 독립운동의 명맥이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순수한 독립투사들은 해방 후 남북한에 친미·친소정권이 들어서면서 권력에서 배제됐다. 이런 인물들을 발굴하고 널리 소개하는 건 역사학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 덜 알려진 인물을 연구하려면 어려움이 많을 텐데.
▲ 공산주의(사회주의) 독립운동사 연구는 어렵다. 우선 문서 자료를 찾으려면 영어 말고도 러시아어와 중국어, 한문 등 여러 언어를 익혀야 한다. 민주화되기 전에는 사상적으로 낙인찍힐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한소수교와 한중수교 전에는 현장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실증 연구를 하려면 현장을 답사해야 하는데, 독립운동 세력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오지로 숨어다니다 보니 찾아가기도 힘들다. 그래서 제자 양성도 쉽지 않다.
-- 중국보다 러시아는 현장 답사가 더 힘들 것 같다.
▲ 조선족 마을이 유지돼온 만주는 그래도 사정이 낫다. 당시 상황을 증언해줄 사람도 남아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1937년 고려인들이 강제이주를 당했기 때문에 이야기해줄 사람이 없다. 내가 러시아 최초의 한인 정착마을 지신허(地新墟)를 찾아낼 때도 고문헌과 지도를 일일이 대조하며 현장에서 확인해야 했다. 이제는 옛날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 드물어 더 힘들어졌다.
-- 이동휘 선생은 사상적 편력이 다양하다. 그가 공산주의자라고 보는가.
▲ 경험적 마르크시스트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신자였지만 1920년대 이전에는 우리나라 기독교에 반공주의가 접목되기 전이어서 큰 모순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함경도의 빈농 출신이어서 제국주의의 차별과 착취의 사슬을 끊자는 공산혁명 세력과 손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본다. 어떤 이는 사회주의 이념도 제대로 모른 채 한인사회당을 창당했다고도 하는데, 그렇게 볼 수는 없다.
-- 국제공산주의 조직 코민테른의 자금 지원을 얻기 위해 사회주의를 선택했다는 말도 있다.
▲ 독립운동 자금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볼셰비키와 손잡은 건 아니다. 지원금을 놓고 임정의 김구,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와 대립하게 되는데, 당시는 이미 이동휘가 이승만과 사이가 틀어져 임정에서 나올 때여서 임정이 개입할 상황이 아니다. 물론 이동휘가 초기 멤버하고만 일을 도모하며 다른 세력과 소원해지거나 반목한 잘못은 부인할 수 없다.
-- 김알렉산드라의 존재도 대중에게 처음 알렸다고 들었다.
▲ 1988년 여름에 유학을 떠나 첫 학기를 마치고 겨울방학 때 그에 관한 논문을 썼다. 2002년 KBS TV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아무르강의 조선여성 알렉산드라 김'의 기초 자료가 돼 보람을 느꼈다. 그 뒤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평가해 2009년 김알렉산드라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 한인사회당 창당 의의는 무엇인가.
▲ 1901년 일본에서 사회민주당이 창당 신고를 했다가 그날로 해산 명령을 받은 일이 있다.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일본에 앞서 해외에서 사회주의 정당을 처음 만든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독립운동사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일제와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 볼셰비키와 연대를 맺어 독립운동 진영이 국제적 조직으로 발돋움했다. 이전에는 출신 지역이나 신분 등에 따라 독립군 파벌이 심했으나 사회주의 이념을 받아들이며 보편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창당 주역이 여성이라는 점도 획기적이다. 이를 계기로 엄청난 운동의 진전을 가져왔다. 거물이나 명망가 중심의 조직도 변화를 맞았다.
-- 한인사회당은 고려공산당으로 이어졌다가 4년여 만에 막을 내렸고, 그 뒤로도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은 비극적 운명을 걸어야 했다.
▲ 중국이나 베트남의 공산주의 독립운동사를 보면 자연스럽게 리더십이 형성돼가는 과정을 밟아왔다. 우리도 편향주의와 극단주의를 극복해가며 기반을 넓혀가야 하는데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의 분열이 있었고 볼셰비키가 갈등을 부추겨 자유시 참변을 빚었다. 그 뒤로는 정통파가 소외되며 파벌이 계속 형성되는 과정을 보였다. 새로 생겨난 파벌은 이전 리더십의 격하와 타도에 나섰다. 이승만은 1세대, 박헌영은 3.1운동 이후 참여한 2세대, 김일성은 30년대부터 활동한 3세대다. 북한은 3세대가 권력을 잡고 남한에선 1세대가 대통령이 됐다. 남북한 정권 모두 리더십이 허약해 외세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던 것도 사회주의자들이 비운을 맞은 원인의 하나였다.
-- 이념 문제 때문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묻혀 있다가 1990년대 이후 조금씩 알려지고 공적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있고 2016년 김일성 외삼촌의 서훈 시비에서 보는 것처럼 논란이 뜨겁다.
▲ 러시아 내전 때 숨진 2만 명 가운데 한인이 300명은 넘을 것이다. 이들은 일본군에 의해 죽지 않았어도 일제 압제에 신음하는 동포들을 구하기 위해 싸우다가 희생된 것이다. 러시아혁명이나 중국 공산혁명에 참여한 한인들을 독립운동가에서 제외하면 얼마나 남겠는가. 미국 전략정보국(OSS)의 특수훈련을 받고 2차대전에 참전한 사람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듯이 국권을 되찾고자 싸웠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북한 정권에서 핵심 역할을 한 사람에게 건국훈장을 주기는 어렵겠지만 북한에서 숙청당한 사람까지는 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남북한이 분단될 줄 미리 알고 항일운동을 했던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 독립운동가 후손은 3대가 가난을 면치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 프랑스는 2차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당한 기간이 4년 2개월인데 우리나라는 35년 식민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는 연간 60조가 넘는 예산으로 레지스탕스 후손 450만여 명에게 보훈 혜택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 기준으로 4조4천억 원의 보훈 예산으로 1만4천여 건을 지원한다. 그나마 신청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심사해 독립유공자를 가리는데, 정부가 독립유공자를 적극 찾아 나서야 한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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