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업계·법원도 심각한 수준"…법원·검찰에 외부 감시기구 설치 주장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한 여성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된 검찰발(發) '미투(Me Too) 운동'이 법조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성차별이 만연한 법조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에 남성 법조인들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힘을 보태고 있다.
31일 검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서지현 검사가 29일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법무부 고위간부의 성추행 의혹 글의 여파가 검찰을 넘어 변호사업계와 법원으로까지 퍼지고 있다.
성폭력이 끊이지 않고 성차별적 인식이 깊이 자리 잡은 법조계 문화는 접대문화와 성과주의식 업무 구조가 교묘하게 뒤섞인 변호사업계에서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출장 중 대한변호사협회 전 고위간부가 다른 여성 간부의 신체를 더듬은 혐의로 검찰 수사가 이미 진행 중이다.
경쟁이 과열된 로펌업계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기업 고객과의 미팅에서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사건 수행과 관련이 없는 젊은 여성 변호사를 내세우는 것은 로펌업계의 오랜 관행으로 꼽힌다.
야근을 하다가 로펌 대표의 사적인 술자리에 불려 나간 여성 변호사의 고충은 성과를 내기 위한 변호사의 고군분투기로 미화되기 일쑤다.
변호사 사무실 내 고용관계에서 소위 '을'의 지위에 놓인 여성 일반직원들이 털어놓는 사정은 더 심각해 보인다. '나랑 연애나 하자'는 아버지뻘 대표 변호사의 성희롱 발언을 참다못해 직장을 관두는 사례가 변호사업계에서는 생소하지 않다.
변호사가 직원의 복장을 지적하면서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여성 직원이 술자리에 불려 나가 고객을 접대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변호사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 대형 법무법인의 직원은 "회식자리에서 만취한 파트너급 변호사가 여성 직원을 옆자리로 불러 어깨를 붙잡고 술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며 "취했다는 핑계로 강제로 껴안고 입을 맞추려는 추태를 부려도 누구 하나 용기 내 말리는 경우가 드물다"고 전했다.
<YNAPHOTO path='AKR20180131060900004_04_i.jpg' id='AKR20180131060900004_1401' title='서지현 검사, 방송 나와 성추행 피해 주장' caption='(서울=연합뉴스) 전직 법무부 고위간부에게 성추행과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글을 검찰 내부망에 올린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가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 당시 법무부 간부였던 안모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8.1.29 [JTBC 뉴스룸 방송화면 캡쳐=연합뉴스] <br>phot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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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잘못된 법조계의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서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높아지고 있다. 일상적인 성폭력에서 가해자로 지목되는 남성 법조인들로부터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서 검사가 제기한 문제는 오랜 기간 검찰의 고질병처럼 이어져 온 남성 위주 상명하복 관행의 산물"이라며 "검찰의 내부문화를 전면 개선하고, 이를 동력 삼아 검찰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견해를 피력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도 "법조계의 왜곡된 성문화가 다른 직역보다 심각한 것은 법조 특유의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알면서도 모른 체했던 많은 남성 법조인의 비겁함을 여 검사의 한 명의 용기 있는 선택으로 깨닫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법조 전반에 자리 잡은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법원과 검찰, 변호사업계가 동시다발적으로 쇄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법원과 검찰에는 외부인으로 감시기구를 구성해 조직 내 왜곡된 성문화를 상시 감독할 필요가 있다"며 "상황이 더 심각한 변호사업계는 변호사단체 규정에 구체적인 조항을 추가해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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