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사전' 이어 10년 만에 자매 책 출간…예리한 직관과 통찰 빛나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씨-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쪼개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을 주어 키워가며 알아내는 것."
김소연(51) 시인이 펴낸 '한 글자 사전'(마음산책)은 이렇게 사전 형식으로 한 글자의 의미를 풀이해 묶은 책이다. '감'부터 '힝'까지 310개의 '한 글자'들을 모아놓았다.
시인은 이런 형식의 책을 10년 전에 '마음사전'(2008)으로 처음 시도했다. '감성과 직관으로 헤아린 마음의 낱말들'이라는 콘셉트로 마음과 관련한 낱말을 모아 그 의미를 섬세하게 풀어냈다. 이번에 낸 '한 글자 사전'은 그 자매 격인 셈이다.
시인은 "10년 전에 '마음사전'을 처음 읽어준 이들과 만나보고 싶었다"며 "내가 건넬 수 있는 빌미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마음사전'을 읽어준 이에게, 10년 세월의 연륜을 얹어 안부를 보내는 것. '한 글자 사전'을 오직 이런 마음으로 완성했다"고 책머리에 밝혔다.
'마음사전'을 읽은 독자라면 잘 알겠지만, 이번 '한 글자 사전' 역시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시인의 예민한 직관과 통찰, 감성이 빛난다. '시'의 풀이로 정리된 세 가지 중에는 "성긴 말로 건져지지 않는 진실과 말로 하면 바스러져 버릴 비밀들을 문장으로 건사하는 일"이 있는데, 이 책 전체가 우리가 평소에 성긴 말로 건져 올리지 못한 의미와 그 안에서 바스러져 버린 비밀들을 날카롭게 포착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글자마다 풀이된 의미가 한 편의 시처럼 읽힌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남는 구절에 밑줄을 치려고 펜을 든다면, 대부분의 페이지가 밑줄로 뒤덮일 듯하다.
"객- 손님을 뜻하는 말이지만 객기, 객소리로 활용될 때야 비로소 숨겨진 뜻이 들통난다. 쓸모없는 군더더기라는 뜻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 뜻을 더더욱 꽁꽁 숨기려고 높다는 뜻을 담아서 고객, 귀하다는 뜻을 굳이 담아서 귀빈이라는 말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22쪽)
"나- 가장 쉬운 연산으로 헤아려지는 자. 그렇지만 가장 어려운 연산으로 헤아려야 할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자. 나를 가장 많이 속이는 장본인. 내가 가장 자주 속는 장본인. 가장 추악하지만 가장 빠르게 용서하는 사람. 빠른 용서로 가장 깊이 추악해지게 방치하게 되는 사람. 가장 만만한 분노의 대상. 가장 최후의 분노의 대상. 실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서 두려운 자. 어쩌면 '너'의 총합일 뿐인 자." (67쪽)
"더- 타인에게 요구하면 가혹한 것, 스스로에게 요구하면 치열한 것." (96쪽)
"둘- 도시의 상업 공간이 가장 노리고 있는 머릿수." (107쪽)
"뒤- 성공을 추구하는 자들은 이것이 대부분 구리며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자들은 이것이 대부분 아름답다." (108쪽)
"모- 모난 돌이 정 맞는다지만 모서리를 선명하게 만듦으로써 반짝이는 보석이 태어난다." (146쪽)
대부분의 한 글자가 몇 문장으로 짧게 정리됐지만, '삶'은 이 책에서 가장 긴 열 쪽 분량이 할애돼 있다. 우리 시대 보통이라 할 수 있는 한 인간의 생애를 건조하고 서늘하게 써내려간 글은 우리가 나이 들수록 점점 추악한 존재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돌연변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에, 인간성을 상실하고 자존심과 영혼을 장롱 속에 넣어둔 시간 동안에, 수많은 재난들이 우리를 덮쳤고 그때마다 우리는 경악했다. 우리 시대의 재난들은 더 이상 천재지변이 아니다. 오랫동안 결속해온 모리배들에 의해 오랫동안 누적돼온 모략이다." (215쪽)
웃음을 자아내는 위트 넘치는 풀이도 많다.
"소- 일도 하고 젖도 주고 살과 뼈도 주고 꼬리와 발까지 주고 가는 이에게 경을 왜 읽어주려 했을까." (228쪽)
"통- 내 가족이 통이 큰 건 불안하지만 내 친구가 통이 큰 건 든든하다." (361쪽)
"헉- 놀랐을 때 쓰던 감탄사였다. 놀랄 일을 너무 자주 겪게 되면서부터 잘 쓰지 않게 됐다. 어이가 없음을 표하는 '헐'이 쓰이고 있다." (385쪽)
400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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