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화재 피해자 등 심리지원 대상자 15%가 고위험군"

입력 2018-01-31 15:06   수정 2018-01-31 16:19

"밀양 화재 피해자 등 심리지원 대상자 15%가 고위험군"

국내 최고 전문가 이영렬 국립부곡병원장 "기-승-전-희망 필요"

(밀양=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세종병원 화재 심리지원 대상자의 15%가량이 고위험군에 속합니다. 고위험군이란 '그냥 놔두면 삶이 달라질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직업·학업을 그만두거나 가족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다 최악의 상황까지 여기에 속합니다."


31일 이영렬(57) 국립부곡병원장은 개인의 트라우마란 쉽게 극복 가능한 게 아니라며 지속적인 상담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 원장은 태안 기름 유출 사고부터 세월호 참사, 경주·포항지진 등 굵직한 재난·사고 현장에서 피해자 심리지원을 도맡으며 국내 최고의 재난 심리지원 전문가로 꼽힌다.
세종병원 화재 당일인 지난 26일 오전 10시 30분께 밀양에 도착한 그는 6일째 현장을 지키며 피해자 가족이나 소방대원, 병원 관계자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밀양에는 이 원장을 비롯해 정신보건 전문요원 29명과 정신과 전문의 3명 등 총 32명이 병원에서 회진하듯 매일 피해자들을 직접 찾거나 전화해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
화재 피해자들에다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소방대원, 병원 관계자 등을 포함하면 지원 대상만 약 400명에 육박한다.
그는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은 죽을 때까지 가지만, 또 그런데도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네 삶"이라며 "고위험군에 속하는 분들은 한마디로 '기억은 남는데 삶이 바뀌는' 경우로 지속적 상담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화재 희생자 유족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소방대원들과 세종병원 직원들도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소방대원이나 병원 직원들로 한정시키면 고위험군은 30% 정도 된다"며 "이들의 고통은 '책임감과 죄책감 사이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했으나 대량의 사상자가 나온 데 따른 죄책감, 사망자 시신을 직접 보며 느낀 충격, '최선의 구조활동이 맞느냐'는 외부 비방과 인신공격성 인터넷 댓글 등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밀양의 경우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일 정도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지역 정서상 '집안 어른을 모시는 것'에 대해 비교적 엄격한 만큼 이번 참사로 인한 사람들의 충격도 다른 대형재난 못지않다.


이 원장은 "유가족이나 소방대원 등 당사자들을 비방하는 인신공격성 댓글은 진짜 죽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라며 "대형 사고나 재난은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데 막말하고 악플 다는 행위는 절제하고 다 함께 슬퍼해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라우마와 함께 사는 방법'을 익히려면 '포스트 트라우마틱 스트레스'(Post-Traumatic Stress)가 아닌 '포스트 트라우마틱 그로스'(Post-Traumatic Growth)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어떤 트라우마가 얼마만큼 있는지 그저 아는 것보다 이 일을 스스로 납득하고 이겨내는 '성장'(Growth) 과정이 있어야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원장은 이를 쉽게 말해 '기-승-전-희망으로 끝나는 스토리텔링'으로 표현했다.
지원단은 대상자들이 이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는 "현재 지원단 멤버는 각종 재난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로 '진짜 전문가들'이란 자부심이 있다"며 "'우리가 움직이는 현장이 곧 상담실'이란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1577-0199'로 전화하면 지역에 상관없이 24시간 상담도 가능하니 꼭 알려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지원단 32명도 부정적이고 어두운 이야기만 듣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매일 아침 회의시간에서 자신들의 경험담을 공유하며 스스로도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이 원장은 중앙정부 차원의 재난 상담지원 상근조직이 이제는 만들어질 때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부랴부랴 팀을 꾸려 파견하거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는 게 부지기수"라며 "적어도 국가적 재난은 상근 직원을 둔 조직에서 전문적으로 전담할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일본 효고현 트라우마센터가 대표적 사례로 중국에서도 쓰촨성 대지진 이후 비슷한 조직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외국은 제대로 된 훈련과정을 거치는데 나는 현장을 뛰어다녔다는 이유로 전문가로 자주 소개돼 부끄러울 때가 많다"며 "그 나라의 문화가 재난 대응에 정말 중요한 만큼 한국의 문화에 맞는 광역단위 재난 심리지원체계가 완성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home122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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