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차 "대북 선제타격 반대 견해 피력했었다"…기고문서 낙마사유 암시
전문가들 "좋지 않은 시그널…트럼프 대북정책 훨씬 강경하다는 뜻"
주한대사 공백기 길어질 듯…NYT "김정은 도발시기에 가장 민감한 외교직 공백"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차기 주한 미국 대사로 내정된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의 낙마 소식에 외신들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30일(현지시간) 대북 군사 공격을 앞두고 한국 내 미국인들을 대피시키는 문제를 놓고 차 석좌가 회의적 반응을 보인 것이 결정적인 낙마 이유로 작용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담당자들은 최근 차 석좌에게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의 대피를 도울 준비가 됐는지를 질의했는데 차 석좌가 대북군사 공격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한반도 유사시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을 해외로 대피시키는 '비전투원 소개 훈련'(non-combatant Evacuation Operation·NEO)은 한반도에 선제적 군사 공격을 하기 전 실행되는데 차 석좌는 평소 제한적 대북 타격에 우려를 나타내왔다고 FT는 전했다.
이날 차 석좌의 낙마 소식을 처음 전한 워싱턴포스트(WP)도 그가 중도 하차한 것은 대북 문제에서 미 정부와의 이견이 주요하게 작용했다며 최근 미 정부가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 제한적 대북 타격, 즉 '코피 전략'에 대한 이견을 예로 들었다.
대북 정책에 대한 차 석좌와 미 정부 간의 이견은 이날 차 석좌 스스로 미 언론에 올린 기고문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됐다.
그는 자신의 낙마 사실을 전한 WP 기사가 보도된 직후 WP에 장문의 기고문을 실어 코피 전략, 즉 북한의 핵 미사일 관련 시설을 정밀 타격하는 전략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차 석좌는 기고문에서 "대북 공격은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을 단지 지연시킬뿐, 위협을 막지는 못한다"면서 "나는 이 행정부 내 한 직위의 후보로 고려되던 시기에 이런 견해를 피력했었다"고 언급, 자신의 낙마 사유를 우회적으로 암시하기도 했다.
차 석좌는 '대북 강경파'로 분류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과는 차이가 있다.
외교적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부 정부 인사도 있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HR 맥매스터 NSC 보좌관 등 주요 강경파 인사들의 대북 기조는 더욱 강경하다는 점에서다.
한국의 피해를 우려해 군사적 행동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던 맥매스터 보좌관조차 지난달 "낙관할 이유가 거의 없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전문가들은 미 정부가 차 내정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 과정을 이미 마친 상태에서, 그것도 상대국(한국 정부)으로부터 임명동의(아그레망)까지 받은 상황에서 내정을 철회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특히 대북 선제 공격에 대한 이견이 낙마 사유로 거론되는 데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이 생각보다 더 강경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톰 라이트 연구원은 "수개월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선제적 타격에 대해 허풍을 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 석좌 낙마 소식은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대가가 큰 신호"라며 "이것은 엄청나면서도 극도로 우려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부 동아시아부 차관보를 지낸 에이브럼 덴마크도 "이런 큰 위기 속에 주요 동맹국 대사를 낙마시킨다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라며 "전략적 과실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낙마 배경과 관련해 차 석좌 부부의 과거 한국 사업 거래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을 요구한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 주말 차 석좌에게 임명 승인 추진 절차를 철회하겠다고 고지하면서 차 석좌와 부인의 과거 한국 사업에 관한 의문점을 거론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백악관이 애초 평창동계올림픽 전까지 주미 대사 임명 절차를 마칠 계획이었지만, 차 석좌는 올림픽 개막일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백악관이나 국무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했다고 전했다.
NYT는 "김정은의 핵 도발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어려운 외교적 도전이 되고 있는 시기에, 이번 결정으로 인해 미국의 가장 민감한 외교지위가 공백으로 남게 됐다"고 지적했다.
차 석좌의 CSIS 동료인 마이클 J 그린 아시아 담당 선임 부소장은 "현 정부의 대북 정책도 그렇지만, 이런 직책에 자질을 갖춘 사람을 끌어오지 못하는 능력도 맥빠지게 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이미 다른 후보자 찾기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미 정부 관계자는 NYT에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에는 '맞는' 사람을 지명하려고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연합뉴스에 "'코피 전략' 등 대북 문제에 대한 이견이 정말 낙마의 사유라면 한미관계나 남북관계 등과 맞물려 우리에겐 안 좋은 시그널일 수 있어 우려된다"며 "지금 바로 후임 절차가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최소 7∼10개월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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