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보고 싶어요"…대학가·직장·SNS로 번진 '검찰발 미투'

입력 2018-01-31 18:54   수정 2018-01-31 20:03

"빛을 보고 싶어요"…대학가·직장·SNS로 번진 '검찰발 미투'
SNS·대학 커뮤니티 등에 성희롱 사례·성폭행 경험 공유 잇따라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김예나 최평천 기자 = "빛을 보고 싶습니다. 이미 오래 어두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서울 시내 한 대학의 일반대학원에 다녔다는 A씨는 30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 실명 계정에 장문의 글을 올려 지도교수의 성희롱을 폭로하는 글을 올렸다. 글의 말미에는 미투 해시태그(#MeToo)가 달렸고 200회 넘게 공유됐다.
A씨는 개인 사정으로 지난해 2학기부터 휴학을 했는데 지도교수가 집요하게 연락을 해와 '학교에 놀러 와라', '단둘이 식사를 하자', '오빠라고 생각해라'와 같은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학기 중에는 지도교수와 평소 친분이 있는 대학강사가 A씨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하거나 불쾌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를 지도교수에게 알렸더니 A씨에게는 되려 '별 뜻 없이 순수하게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는 잔소리가 돌아왔다.
A씨는 "교수님께 (지난해) 12월 초에 사과해주시고 다른 교수님께 논문을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이메일을 썼으나, 소름 끼치는 침묵과 주변의 비겁한 대응을 겪어왔다"고 털어놨다.
A씨는 2016년 1, 2학기와 2017년 1학기 성적증명서를 첨부하며 "실력부터 문제 삼는 분들도 계신다. 제가 성적이 행여 최하위권이었다고 해도 그것이 꽃뱀이라든가 하는 모함의 증거로 쓰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3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대학 커뮤니티 등에는 자신이 직장이나 선후배 사이에서 당한 성희롱을 폭로하거나 성폭행을 당했던 경험을 익명으로 털어놓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빚어낸 '미투(Me Too)' 바람이 대학가와 사회각계, SNS로 번지는 모양새다.
학생들은 A씨나 서 검사처럼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거나, 가해자를 지목하지는 않는 분위기였지만 앞으로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며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놨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놨다.
서울대생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서 검사가 내부망에 올린 글 전문과 함께 "저는 현재 회사에서 가해자 얼굴 매일 보면서도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인사 불이익은 물론 구설에 오르는 게 싫기 때문이다. 매일 얼굴 보면서 꾹 참고 조용히 소처럼 일만 하다 돌아와야 하는 제가 정말 싫어진다"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글이 올라왔다.
한 여학생은 연세대 온라인 익명게시판 '대나무숲'에 서 검사의 폭로를 언급하며 "이제 곧 들어올 새내기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20살 때 소개팅에서 술을 마신 뒤 소개팅남 집에서 알몸 상태로 눈을 떴고 성폭행이라는 사실을,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내용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도 검찰을 넘어 변호사업계, 법원 등에서도 성차별이 만연한 법조문화를 바꿔야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성폭력이 끊이지 않고 성차별적 인식이 깊이 자리 잡은 법조계 문화는 접대문화와 성과주의식 업무 구조가 교묘하게 뒤섞인 변호사업계에서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출장 중 대한변호사협회 전 고위간부가 다른 여성 간부의 신체를 더듬은 혐의로 검찰 수사가 이미 진행 중이다.
한 대형 법무법인의 직원은 "회식자리에서 만취한 파트너급 변호사가 여성 직원을 옆자리로 불러 어깨를 붙잡고 술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며 "취했다는 핑계로 강제로 껴안고 입을 맞추려는 추태를 부려도 누구 하나 용기 내 말리는 경우가 드물다"고 전했다.
대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서 검사가 제기한 문제는 오랜 기간 검찰의 고질병처럼 이어져 온 남성 위주 상명하복 관행의 산물"이라며 "검찰의 내부문화를 전면 개선하고, 이를 동력 삼아 검찰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견해를 피력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도 "법조계의 왜곡된 성문화가 다른 직역보다 심각한 것은 법조 특유의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알면서도 모른 체했던 많은 남성 법조인의 비겁함을 여 검사의 한 명의 용기 있는 선택으로 깨닫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지현 검사가 이날 대리인을 통해 "그 후 제가 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지, 혼자만의 목소리를 냈을 때 왜 조직이 귀 기울일 수 없었는지에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고 올린 글에도 응원 댓글과 함께 의료계, 교육계, 경찰 등에서 겪은 경험담을 털어놓는 글도 달렸다.
이날 서검사의 근무지인 창원지검 통영지청에는 서 검사를 응원하는 국민이 보낸 꽃바구니와 카드가 이어졌다.
run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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