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세계화 첨병 역할에 보람"…연변한국국제학교서도 근무
(하바롭스크<러시아>=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러시아 극동시베리아의 중심도시 하바롭스크시 인구는 61만여 명이다. 한반도 8배 면적의 하바롭스크주에는 143만여 명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고려인은 8천15명(2017년 외교부 발표 기준)으로 145개 민족 가운데 네 번째로 많다. 재외국민은 영주권자 6명, 일반체류자 56명, 유학생 30명 등 모두 92명이다.
이곳에도 교육부가 세운 한국교육원이 있다. 18개국 41개 재외 한국교육원 가운데 36번째, 러시아에서는 사할린과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어 세 번째로 2007년 8월 설립됐다. 2001년 모스크바 남쪽 로스토프나도누에도 문을 열어 러시아의 한국교육원은 모두 4개이다.
지난달 22일 하바롭스크 레닌거리에 있는 하바롭스크 한국교육원을 방문했다. 서울에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가 찾아왔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이곳은 한낮에도 수은주가 영하 27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권기열(57) 원장은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이곳 추위를 보고 놀라지만 습기가 없어 바람만 심하게 불지 않으면 견딜 만하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2월과 9월에 새 학기가 시작해 4개월씩 운영합니다. 올 1학기에 등록한 수강생은 기초A·B, 초급A·B, 중급A·B, TOPIK(한국어능력시험)Ⅰ·Ⅱ 등 9개 반에 모두 298명입니다. 교실이 두 개밖에 되지 않아 인원을 늘리고 싶어도 더 늘릴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수강생 중 고려인은 20% 정도고 나머지는 현지인들이죠. 한국인이 운영하는 큰 공장이나 한국 대기업이 없어 취업 목적의 수강생은 많지 않고 대부분 한국 문화가 좋아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입니다."
이곳에도 한류 열기는 뜨겁다. 함께 자리한 지해성 하바롭스크한인회 총무는 "K팝 스타들의 춤을 따라 하는 커버댄스 경연대회를 해마다 열고 있는데 현지 젊은이가 수백 명씩 모인다"고 설명했다.
"한국어 강좌뿐 아니라 한국 영화와 TV드라마, 사물놀이, 한식 등 문화교실을 운영하고 전문가를 초청해 문화강좌도 열고 있습니다. 강좌가 열릴 때마다 수강생들이 높은 관심을 보입니다. 매년 11월에는 한국어 잔치마당을 꾸미는데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비롯해 춤, 시낭송, 연극 등의 경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바롭스크주와 아무르주를 포함해 태평양교육대에는 한국어과가 있으며 국경수비사관학교·철도대·아무르국립살롬알레헴대·태평양대·경법대에는 한국어 과목이 개설돼 있다. 초중고 가운데서도 3개교는 정규 수업 때, 4개교는 방과후학교 시간에 한국어를 가르친다. 한글학교는 6개로 대부분 개신교 선교사가 운영하고 있다.
국어 교사 출신의 권 원장은 대구광역시교육청에 재직하다가 2015년 8월 5일 이곳에 부임했다. 해외에서 현지인과 고려인 동포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국어 세계화의 첨병'이자 '친한파 육성의 전위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하바롭스크에는 재외공관이 없어 외교관이나 영사 역할도 대신 할 때가 많다. 시정부와 주정부 행사, 고려인단체나 한인회 모임 등에 단골로 참석하는가 하면 우리나라 여행객이 여권 분실 등의 사고를 당하면 행정 업무를 돕기도 한다.
권 원장은 2005년부터 3년간 중국 연변한국국제학교에 파견돼 근무했다. 이곳에서는 조선족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쳤다.
"고려인과 조선족 동포들은 역사의 희생자입니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겨 나라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때 나라를 되찾으려고, 혹은 먹고살고자 고향을 등지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간 분들의 후손이죠. 이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곳까지 이주해왔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합니다. 이분들은 우리나라의 큰 자산이기도 합니다. 동포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면 국익에도 큰 보탬이 되죠. 좀 더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이분들을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TV 여행 프로그램 등의 영향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들르는 관광객이 많아졌다. 하바롭스크에 취항하는 아시아나항공과 여행사 등도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를 엮는 연계 관광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항공도 하바롭스크 직항편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과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는 독립투사들의 발자취가 서린 곳입니다. 그러나 사적지의 보존과 관리 상태가 좋지 않고 기념물이나 표지판이 설치돼 있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제 집무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터가 한인사회당 간부회관이 있던 곳인데, 아무런 안내판이 없는 형편이죠. 우리 정부와 민간이 나서서 러시아 당국과 협조해 한글 표지판을 설치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관광객들이 러시아 건축물과 자연경관만 둘러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 현장도 답사하면 훨씬 유익하고 뜻깊은 여행이 되겠죠."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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