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선희 기자 = "금융투자산업은 한국의 미래입니다, 영원한 금융투자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황영기(66) 금융투자협회장은 2일 오후 여의도 금투센터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은행, 보험, 증권, 자산운용 등 거의 모든 금융업을 거쳐봤다"면서 "앞으로 기회는 금융투자산업에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개인적으로 금융 분야에서 일한 지난 20년에 대해 회한이 많이 남는다. 반도체나 철강, 조선 등 산업 분야에선 한국에서 세계 최고 기업들이 나왔지만, 금융에선 아직 글로벌베스트 기업이 없다"고 운을 뗐다.
그는 "금융투자산업은 은행에서 거절당한 저신용 경제주체들에 모험자본을 공급해 혁신을 끌어내고, 가장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며 "투자은행(IB)은 세상이 변화하게끔 돈의 흐름을 바꾸는 자극제가 될 수 있는데,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앞으로도 금융에선 글로벌베스트 기업이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정부는 멀리서 업계가 뛰어노는 걸 보다가 결정적일 때 들어와서 '治(치)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시장주의자로서의 소신을 밝혔다.
그는 "금융투자업은 투자자 보호, 금융시스템의 안정, 금융회사의 건전성 등 세 가지를 확보하기 위해 규제는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사전에 커다란 벽을 쳐놓으면 자율과 창의가 뛰어놀 공간은 좁아지고 좁은 규제의 틀 안에서 자란 산업의 체력은 허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황 회장은 "다행히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조선 시대 정조의 개혁정책 신해통공(辛亥通共·시전 상인의 상업 활동을 다른 상인들에게 허용한 조처)을 본떠 '무술통공을 하겠다'고 밝혀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진입 규제장벽 철폐로 은행업에서 경쟁이 일어난다면 한국 금융업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변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협회장으로 선출돼 자본시장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달려온 지난 3년은 가장 보람된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증권과 자산운용사, 은행 등에서 최고경영자를 지내 금융과 실물을 모두 경험한 전문가로 2015년 2월 취임했다.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로 '검투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 황 회장은 협회장 취임 후 경직된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고 합리적인 인사로 강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기 3년간 자본시장에서 많은 변화도 이끌었다.
초대형 투자은행(IB) 도입으로 대형 증권사들이 발행 어음 등 사업을 할 수 있게 됐으며 비과세 해외투자펀드와 '만능계좌'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 선진형 자산관리상품을 선보이고 장외주식시장(K-OTC) 활성화 발판도 마련했다.
펀드시장 규모는 3년 전 398조원에서 540조원으로 커졌고 취임 당시 86개사이던 운용사는 전문사모운용사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169개로 증가했다.
황 회장은 "개인적으로 임기 중에 증권산업이 은행산업과 비교해 불리한 여건에서 경쟁하는 점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화두를 던져 공감을 끌어내고 증권사 균형 발전 30대 과제 마련의 결과물을 낳은 데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26개 증권사와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구성해 블록체인 인프라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 첫 공동인증 서비스 체인(Chain) ID라는 혁신을 선보이면서 회원사들의 업무 영역이 넓어지고 산업의 위상이 높아진 점도 주요 성과로 꼽았다.
황 회장은 그러나 "지금은 타 금융권뿐 아니라 정보기술(IT)과 유통 등 다른 분야 회사들과 무한 경쟁해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인데, 업계 스스로 오랜 통제에 순치돼 담 너머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의욕을 잃지 않았는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투자산업은 지도에 없던 신대륙을 찾아 나서는 것이 본질로, 내비게이션보다 나침반을 들고 떠나야 하는 가장 역동적인 산업"이라며 임직원들에게 야성과 상상력, 앞을 내다보는 내공을 키우라고 주문했다.
황 회장은 "오늘 이임식이 협회장을 마치는 자리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1975년 1월 8일 130여 명의 사회초년생 입사(삼성그룹) 동기들과 시작한 43년 1개월의 긴 사회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생을 여는 출발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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