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로만 협력 의사…시진핑 "핵심이익 상호 존중해야"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영국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의 공식 지지를 둘러싸고 적잖은 신경전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을 방문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일대일로 구상을 지지하는 내용의 서면 양해각서(MOU) 체결을 거부했다고 2일 보도했다.
메이 총리가 전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황금시대'를 선언한 것과 달리 내면적으로 양국간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던 셈이다.
메이 총리와 시 주석은 전날 베이징(北京)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이 동서 문명이 서로 교류하며 거울로 삼고, 다른 문명 국가와 화합 공생을 촉진하는 모델을 수립"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정상회담 소식을 보도한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제시한 '일대일로' 전략이 세계적으로 깊은 영향을 끼쳤고 양국이 일대일로 전략을 함께 펼쳐 전 지구 및 지역의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바란다"는 메이 총리의 발언내용도 함께 전했다.
하지만 메이 총리는 구두상의 수사와는 달리 일대일로 지지를 공식적으로 못 박는 것은 거부했다.
FT는 양국 협상에 정통한 한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측이 지난해 성탄절 이전부터 일대일로 MOU 체결과 관련한 압력을 가해왔으나 영국이 이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영국 총리실도 메이 총리가 관련 MOU에 서명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했다. 런던의 한 중국 당국자는 "'황금시대'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영국이 여기에 서명치 않는 것은 중국을 매우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특히 중국이 메이 총리의 방문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했던 바는 메이 총리가 일대일로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영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올라타는 첫번째 서방국가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영국은 지난 2015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서방 주요국가중 처음으로 창립회원국 합류를 신청했었다.
SCMP는 시 주석이 메이 총리와 회담에서 서로의 '핵심이익' 존중을 강조한 것이 일대일로에 대한 영국의 공식적인 지지의사를 확보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메이 총리에게 "중영 양국은 서로의 핵심이익과 중대 관심사를 존중해야 하며 민감한 문제를 건설적인 방법으로 잘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또 일대일로가 공개, 투명, 개방, 포용, 상호공영의 원칙을 견지하며 시장 규율과 국제 규칙에 맞춰 운행될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달 31일 메이 총리는 우한(武漢)에서 중국 도착 일성으로 "중국이 국제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경고한 데 이어 중국 방문 기간에 지속해서 중국의 '국제기준 준수'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신경전에도 중영 양국은 메이 총리의 방중 기간 모두 90억 파운드(13조6천억원)에 이르는 경협 프로젝트에 서명했다. 여기에는 스탠다드차타드와 중국 개발은행이 일대일로 연선(沿線)국가의 인프라 개발을 위한 100억 위안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일대일로를 둘러싼 중영 양국의 이견에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이중적인 관점이 자리하고 있다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추이훙젠(崔洪建) 중국 국제문제연구소 유럽연구부 주임은 "메이 총리가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일대일로 추진을 강조한 것은 다른 서방 지도자들의 우려에 호응하는 것이었다"며 "이번 일이 일대일로 자체나 중영 관계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양국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들 계기를 잃는 셈이 됐다"고 말했다.
선지루(沈驥如)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영국 입장에서는 브렉시트(Brexit) 이후로 중국과 관계를 더욱 다져야할 필요가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유럽연합(EU)을 벗어난 영국이 유럽에서나 세계에서 주변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 연구원은 그러면서 "메이 총리가 일대일로를 공식 지지하고 나서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했을 것"이라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수백년의 글로벌 슈퍼파워로서 영국은 국제관계의 균형이라는 전통을 유지해왔고 이는 중국에 너무 가까이 붙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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