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후 국기 두른 채 파시스트 경례"…난민에 의한 현지 소녀 살해사건과 연관 추정
총선 앞두고 반난민 정서 고조되는 이탈리아 상황 반영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 중부 도시 마체라타에서 3일 극우 성향의 현지 청년에 의한 난민을 노린 총격 사건이 일어나 여러 명이 다쳤다.
공영방송 RAI뉴스를 비롯한 이탈리아 언론은 이날 오전 11시께(현지시간) 마체라타 도심에서 주행 중인 소형 차량에서 보행자들에게 총탄이 발사됐다고 전했다.
로마노 카란치니 마체라타 시장은 "2시간에 걸친 총격 행각으로 6명의 외국인이 다쳤고, 이 중 1명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부상자 모두가 흑인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달리는 상태에서 총격을 가한 뒤 도주한 차량을 추격한 끝에 첫 총격 사건 발생 약 2시간 만에 28세의 이탈리아 백인 남성 루카 트라이니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경찰은 그의 차량에서 범행에 쓰인 권총도 압수했다.
그는 홀로 차량을 타고 시내를 돌다가 흑인들만 보이면 총구를 겨눈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후 차량을 버리고 도주했다가 경찰에 제압된 그는 난민에 반대하는 극우정당인 동맹당과 연관이 있는 현지 주민으로 전과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작년 6월 열린 지방선거에서 동맹당 소속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목격자들은 그가 범행 행각 후 차량에서 내린 뒤 초록색, 흰색, 빨강색으로 이뤄진 이탈리아 삼색기를 어깨에 두른 채 파시스트식 경례를 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는 경찰에 끌려가면서 '이탈리아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마르케 주에 위치한 마체라타는 로마에서 동쪽으로 약 200㎞ 떨어진 인구 4만5천 명의 조용한 소도시로, 사흘 전 18세의 이탈리아 소녀 파멜라 마스트로피에트로가 여행 가방에 토막 살해된 시신으로 발견돼 이탈리아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데 이어 다시 한번 끔찍한 범죄의 현장이 됐다. 경찰은 사건 발행 직후 도심의 통행을 전면 통제한 채 주민들에게 공공 장소 출입을 자제하고 실내에 머물 것을 당부했다.
현지 언론은 소녀의 토막 살해 사건 용의자로 전날 29세의 나이지리아 출신 난민이 검거된 것에 비춰, 이번 총격이 난민들을 겨냥한 계획된 '증오 범죄'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 나이지리아 난민은 작년에 이뤄진 심사에서 난민 자격을 거부당했으나, 이탈리아를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내달 4일 실시되는 총선을 앞두고 이탈리아에서 난민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것이라 이탈리아 총선에 어떤 영향을 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반(反)난민 정책을 앞세우는 극우정당인 동맹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소녀의 살해 사건 용의자가 붙잡힌 직후 "이 벌레가 이탈리아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소녀의 죽음은 이탈리아에 난민들을 받아들인 집권 좌파 정부의 책임"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동맹당과 연계된 인물이 범인으로 드러나자 이번 범행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면서도 통제되지 않은 난민 정책이 사회적 갈등을 일으켰다고 말하며 화살을 집권당에 돌렸다.
살비니 대표는 집권 시 첫 해에 15만 명의 난민을 송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있다. 2014년 이래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입국한 아프리카, 중동발 난민은 60만 명에 달한다.
동맹당,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 국수주의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당(FDI)으로 구성된 우파연합은 현재 지지율 37% 안팎을 기록하고 있어, 내달 총선에서 최다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의식, 즉각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젠틸로니 총리는 "증오와 폭력은 이탈리아를 분열시킬 수 없다"며 "폭력을 획책하는 그 누구라도 엄격히 단속·처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좌파 자유평등당(LEU)의 피에트로 그라소 대표 역시 "마체라타에서 벌어진 일에 충격을 금치 못한다"며 "이 증오와 폭력의 소용돌이를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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