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덕에 배우생활…꾸준히 작품 활동 했으면 "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배우 우현(54)과의 만남은 어렵게 성사됐다. 영화 '1987' 개봉 이후 언론에서 숱한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지만, 그는 모두 정중히 사양했다.
오랜 설득 끝에 지난 5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우현은 여전히 조심스러워했다. "그 시절에 누구나 다 한 일인데, 제가 마치 영웅적인 일을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게 너무 부담됐습니다. 저는 집안 걱정, 자식 걱정, 먹고 살 걱정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거든요."
우현은 '1987'에서 당시 경찰 총수인 치안본부장 강민창 역으로 출연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려는 인물이다. 우현의 실제 '전력'과는 정반대되는 캐릭터여서 주목받았다.
1987년 당시 연세대 신학과 4학년이던 우현은 총학생회 집행부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과 49재 행사를 이끌었다. 우상호 의원과 배우 안내상은 재학 시절 그와 민주화운동을 함께한 동지들이다.
우현은 "1987'은 어떤 배역이든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연기한 실존 인물이 경상도 출신이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처음 연기하느라 힘들었다"면서 "부산 출신인 김윤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우현은 이한열 열사가 연세대 교문 앞에서 전투 경찰이 쏜 최루탄 파편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던 당시 집회 현장에도 있었다. 그는 "영화 속 연대 앞 시위 장면은 실제 시위 모습을 거의 똑같이 재현했다"면서 "30년 만에 다시 보니, '내가 그때 외면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먹먹했다"고 떠올렸다. 우현은 대학 시절 학생운동으로 2번이나 수감 생활을 했다.
그는 아내 조련(배우)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가했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고 했다.
"87년 이후 그렇게 큰 시민들의 물결은 처음이었죠. 무엇보다 시위 문화가 많이 발전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는 뭔가 임팩트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 보도블록을 깨서 던지고, 화염병을 던지고, 건물을 점거했죠. 하지만 촛불집회 때 평화적으로 시위하고 자발적으로 휴지를 줍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그때 던진 10개의 돌보다, 이들이 줍는 휴지 열 조각이 더 큰 반향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987' 흥행 이후 그의 전력이 알려지면서 혹시 주변의 반응이 달라졌는지 물었다. "가끔 후배 연기자들이 촬영장에서 반갑게 인사를 해온다"면서 "아내는 '집에서도 그렇게 좀 민주적이면 안 돼?'라며 농담으로 핀잔을 줬다"며 웃었다.
대학 졸업 후 연극 프로덕션 등에서 몸담았던 그가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나이 마흔이 다 돼서였다.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2003)에 우연히 단역으로 출연한 게 계기가 돼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감초' 배우로 자리 잡았다.
개성 강한 그의 외모가 한몫했다. 2016년 MBC '무한도전-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 특집에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그는 배우 김기천과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향숙이'를 외치던 박노식 그리고 '통아저씨'와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고 했다. 우현은 "김기천 형님과 통아저씨를 닮았다는 것까지는 인정하겠다"면서 "그러나 솔직히 '향숙이'보다는 제가 잘생기지 않았냐"며 발끈했다. 우현과 박노식은 친한 사이다.
그는 "제가 아무리 전날 푹 자고 나와도 사람들은 늘 저더러 '너 어제 술 마셨느냐?'라고 묻는다"면서 "외모는 극복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외모 덕분에 배역도 맡을 수 있어서 아직 의학의 힘을 빌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1987' 주제를 벗어나니 그의 입담도 터졌다. 반전 매력도 뿜어져 나왔다.
그는 과거 한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어렸을 때 쇠고기만 먹었다"고 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친구 안내상도 "우현이가 늘 현찰 300만 원 정도를 가지고 다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남들은 제가 무슨 재벌 아들쯤 되는 줄 오해하시는데, 아버지가 의사셨다"면서 "아버지가 돼지고기 등 몇 가지 음식을 안 드시다 보니 먹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우현은 배우 데뷔 이전에 신촌에서 맥줏집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쫄딱' 망했다가 나중에는 그럭저럭 장사가 잘 됐다고 한다. "그때는 카드가 없어서 다 현금으로만 받았죠. 그래서 안내상이 출연하는 연극을 보러 갈 때는 배우들에게 술을 사주려고 호주머니에 현금을 좀 넉넉하게 가져갔죠. 그 당시에 술은 제가 다 샀습니다."
그는 오는 8일 개봉하는 '조선명탐정:흡혈괴마의 비밀'에도 출연했다. '조선명탐정' 시리즈 1편과 2편에 이은 카메오 출연이다. "사실 제가 1편에서 칼을 맞고 죽는 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2, 3편에도 출연하고 싶어서 김석윤 감독님을 만날 때마다 '전 안 죽었다. 자세히 보면 손가락이 움직인다'고 우겼죠. 정말 다시 살아나려고 노력 많이 했습니다. 하하."
그는 배우로서 큰 욕심이 없다고 했다. "너무 뜨는 것도 싫고, 지금 정도가 딱 좋은 것 같아요. 1년에 한두 편씩, 앞으로 10년 정도 더 연기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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