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환자 3명 중 1명 '진행성 간암'…3기 이상이면 5년 생존율 20%
다학제 진료로 환자별 몸 상태에 맞는 치료법 찾는 게 최선
(서울=연합뉴스) 배시현 서울성모병원 간담췌암센터 교수 = #. 김모(53.여)씨는 모서리에 부딪힌 상처가 지혈이 안 돼 2008년 병원을 찾았다.
별거 아닐 거라는 생각이었지만, 검사결과는 간암이었다. 5년 전 진단받은 만성 B형간염이 화근이었다.
게다가 이미 간문맥과 주변 혈관까지 깊숙이 침범한 진행성 간암이었다.
의료진과 상담 끝에 당시만 해도 진행성 간암 치료법으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간동맥 항암주입요법'을 시행했다.
5차례에 걸친 간동맥 항암주입요법 후 8㎝ 크기였던 종양과 문맥 혈관의 암세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호전됐다. 이후에도 김씨는 이 치료를 3차례 더 받았다. 그리고 2016년 1월에는 딸의 건강한 간을 이식받아 현재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다.
김씨와 같은 간암 환자의 3분의 1 이상은 암이 간이 통하는 혈관(문맥)을 침범했거나 간 밖으로 전이된 진행성 간암 상태로 처음 진단받는다. 일반적으로 크기가 크고 다발성으로 발견된 3기 이상 진행성 간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20% 정도다. 반면 크기가 작고 한 개로 발견된 2기 이내 간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약 55%로 차이가 크다.
최근 간암 치료 성적이 지속해서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가 복수, 황달, 통증 등의 증상이 생긴 후 병원을 찾고 진행성 간암으로 진단된다.
진행성 간암의 무서운 특징인 간 문맥 침범은 종양을 주변으로 확산시키거나 간기능을 떨어뜨려 치명적인 합병증의 원인이 된다. 이런 환자는 간기능 저하로 치료가 어려워져 사망률이 더 높다.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간암의 병기 역시 1기부터 4기로 나눈다. 암세포의 크기, 개수, 혈관침범 여부, 림프절 및 다른 장기로의 전이 등을 종합해 병기를 평가한다. 간암의 종양 표지자인 '알파태아단백' 수치도 암의 악성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진행성 간암의 치료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직도 그 효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현재는 표적 치료제인 '소라페닙'이 승인돼 표준 치료법으로 쓰이고 있다. 서양과 아시아에서 시행된 대규모 임상연구에서 소라페닙은 진행성 간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연장하는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소라페닙 투여에도 결국 서서히 종양이 진행하고, 5% 이내의 환자에게서만 부분 반응 이상의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또 소라페닙은 비용이 고가인 데다 투약 후 손과 발에 심한 부종과 각질이 생기면서 벗겨지는 수족 증후군, 가려움증, 발진 등의 피부 부작용이 20∼40%에서 관찰된다. 설사와 같은 소화기장애 부작용도 10% 정도에 달한다. 따라서 이 약을 투약하기 전에 치료 효과 예측이 꼭 필요하다.
치료 효과 예측에 도움이 되는 게 PET/CT(양전자방출 단층촬영/전산화 단층촬영) 검사다. PET/CT는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대사 변화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장비로 주로 암 진단에 사용된다.
소라페닙 치료를 받은 진행성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PET/CT 검사를 한 결과를 보면 PET/CT 검사에서 종양세포의 대사 활성도가 빨랐던 환자들은 간암이 진행되는 속도도 빠르고, 질환이 조절되는 정도와 중앙 생존기간이 낮았다. 이런 연구결과로 볼 때 PET/CT 검사에서 종양 성장 속도가 빠른 환자는 소라페닙 단독 치료가 아닌 여러 종류의 치료법을 함께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간암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는 간이식이다. 하지만 진행성 간암의 경우 간이식을 바로 하기가 어렵다. 간이식은 대개 단일 간암의 크기가 5㎝ 이하거나 3㎝ 이하 간암의 개수가 3개 이하이면서 원격전이와 혈관 침범이 없는 경우에만 시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선 김씨의 사례처럼 진행성 간암에는 간암 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에 항암제와 혈관폐쇄(색전) 물질을 넣어 암세포를 죽이는 '경동맥 화학색전술'이나 암종에 직접 고용량의 항암제를 전달하는 '간동맥 항암주입요법'으로 병기를 낮춘 다음 간을 이식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중에서도 간동맥 항암주입요법은 2008∼2013년 사이 이뤄진 국내 10개 대학병원의 공동 연구에서 진행성 간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높이고, 종양 성장 속도를 늦춰 결과적으로 간암의 진행을 막는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치료가 까다로운 진행성 간암 환자일수록 다학제 대면진료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다학제 대면진료는 진단과 치료에 관련된 여러 임상과의 전문의가 환자를 직접 만나 정확한 진단 및 치료계획을 도출한 다음 환자의 병기에 맞는 정확한 치료법을 제공한다. 소화기내과, 외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방사선종양학과, 종양내과 등이 공동으로 참여한다.
이는 의사결정과 치료를 신속하게 진행하기 때문에 완치율을 높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진행성 간암으로 진단받은 환자 대부분은 절망에 빠지기 쉽다. 이때 의학적 치료를 마다하고 액기스, 환, 녹즙 등의 자연요법이나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매달리면 상태가 더 나빠져 후회하거나 치료 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럴수록 주치의를 믿고 적합한 치료를 받아야만 생존 기간 연장과 더불어 완치의 기회도 잡을 수 있다.
◇ 간 건강을 위한 생활수칙 10계명(대한간학회)
① 불필요한 약은 오히려 간에 해로울 수 있는 만큼 삼가야 한다. 특히 간 질환이 있는 환자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② 지나친 음주는 심각한 간 질환의 원인이 된다. 과다한 음주 후 해장술이나 불필요한 약제의 추가 복용은 간 손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삼가야 한다.
③ 음식이나 식수가 간염 바이러스에 오염될 수 있는 만큼 집 밖에서 마시는 물, 먹는 음식이 위생적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④ 평소 영양분이 어느 한 가지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⑤ 튀기거나 기름진 음식을 줄이고 싱겁게 먹는 습관을 지니도록 한다.
⑥ 섬유소가 많은 야채, 과일, 곡물을 많이 섭취한다.
⑦ 너무 달고 지방성분이 많은 후식이나 간식은 피하고, 비만해지지 않도록 체중을 조절한다.
⑧ 무리한 체중 감량으로 몸에 필요한 비타민이나 미네랄 성분, 영양분들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⑨ 일주일에 1㎏ 이상 급격한 체중감소는 심한 지방간염 혹은 간부전증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⑩ 적당한 운동은 건강한 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 배시현 교수는 1990년 가톨릭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로 재직해오면서 현재 외래부장을 맡고 있다. 배 교수는 간암, 간줄기세포, 간염 치료의 권위자로 꼽힌다. 간동맥색전술 치료가 어렵거나 색전술 치료에 효과가 없는 진행성 간암에 간동맥 화학주입요법으로 효과적인 항암효과를 입증하고 이를 다수의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또 진행성 간암의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PET/CT 및 바이오마커를 이용한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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