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파웰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국내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 시음회에 1~5번 번호가 붙은 와인들이 차례로 나왔다. 시음회 배경 음악은 은은한 드뷔시 '달빛'에서 극적으로 휘몰아치는 바그너 '발퀴레의 비행'으로 점차 바뀌었다. 사람들은 1번 와인 맛이 부드럽다고 말했고, 5번 와인을 두고서는 강력하고 무겁다고 평가했다. 1번, 5번 와인은 똑같은 제품이었는데도 말이다.
신간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뮤진트리 펴냄)에서 소개한, 음악이 우리 인식을 얼마나 좌우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저자 존 파웰은 작곡과 물리학을 전공한 영국의 음악가이자 물리학자다.
그는 전작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에서는 음향학과 음악물리학에 초점을 맞춰 음악의 과학을 조명했다. 신간에서는 심리학, 사회학을 기반으로 음악이 우리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소개한다.
프랑스 음악이 나올 때는 프랑스 와인이 다른 나라 제품보다 더 팔리며, 느린 배경 음악이 흐르면 사람들의 씀씀이가 1/3 이상 늘어나는 등 음악을 활용한 마케팅 사례들은 열거하기도 벅차다. "음악 마케팅에 관한 한 우리는 고래가 다니는 길에 놓인 크릴새우만큼이나 무력한 존재가 된다."
음악은 강력한 감정 자극제 역할도 한다. 연구에 따르면 유쾌한 음악은 뇌의 쾌락 중추를 활성화하고 공포 중추(편도체)를 진정시키며, 불쾌한 음악은 이와 정반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연구결과가 입증하는 음악의 효능은 더 많다. 음악은 우울증을 가라앉히고 통증을 줄여주며 주변 사람들과 유대감을 맺도록 돕는다. 음악은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지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인류가 왜 이렇게 음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자연스레 생각이 미치게 된다. 성적 매력 과시, 집단 유대감 등을 제치고 저자가 가장 앞세우는 이유는 '아기 때 들은 엄마의 노래'다.
인류는 지난 수천 년간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거나 흥얼대는 일을 이어왔다. 어떤 문화권을 막론하고 말이다. 플라톤만 해도 2천 년도 더 전에 자장가의 효용성을 서술했다. 인간의 수용력이 가장 열려 있는 시기에 음악은 우리 곁을 지켰다.
책은 중간중간 우리가 평소 막연하게 궁금했던 부분들도 조목조목 풀어준다. 단조는 슬프고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장조보다 더 적합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가 든 첫 번째 이유는 단조가 실제로 장조보다 복잡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음계만 봐도 장조는 음들이 서로 단순하고 끈끈하지만, 단조는 상대적으로 응집력이 떨어지기에 복잡하거나 어두운 음악 분위기에 더 어울린다. 단조 선율이 장조 선율보다 도약 폭이 좁은 것도 유력한 이유 중 하나다. 우리가 행복할 때 억양 변화가 크다는 점과 연결지어 이해하면 된다.
장호연 옮김. 396쪽. 1만7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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