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시치헤이 일본론 '공기의 연구'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일본인들이 쓰는 표현 중 'KY'가 있다. '구키요메나이', 즉 공기(구키)를 읽지 못한다는 뜻을 영어로 표현한 이 말은 '눈치가 없는 사람,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신간 '공기의 연구'(헤이북스 펴냄)는 일본의 저명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 1921∼1991)가 이 '공기'를 분석한 책이다. 1977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일본을 이해하는데 유효한 일본론으로 꼽히는 책이기도 하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공기'는 '분위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그 당시의 공기를 모르면서 비난하시는데…', '그곳의 공기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는 식으로 표현된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을 가진 '공기'를 두고 저자는 일본에서는 어떤 일의 최종적인 결정자가 사람이 아닌 '공기'인 것 같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일본사회를 지배하는 힘인 '공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설명하기 위해 '임재감적(臨在感的) 파악'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임재감적 파악이란 사물을 그 자체로 파악하지 않고 거기에 '뭔가가 깃들여 있다'(임재)고 파악하는 개념이다. 물질로부터 어떤 심리적·종교적 영향을 받아 물질의 배후에 뭔가 있다고 느낌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어떤 영향을 받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상황을 임재감적으로 파악해 역으로 상황에 지배된다는 설명이다.
덴노제(천황제) 역시 임재감적 파악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덴노'라는 우상적인 대상에 대한 임재감적 파악에 바탕을 두고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수립되는 일종의 '공기의 지배체제'라는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라는 것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저자는 서양에서는 여러 방법으로 공기의 지배를 막으려고 노력하지만 일본에서는 '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식으로 공기의 지배를 합리화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는 책임을 회피하는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상황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고, 그 행위의 결과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 공기(상황)를 만들어낸 사람의 책임이지 자신은 아니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또 공기에 '물을 끼얹어' 공기를 비판하는 행위는 규탄을 받게 되고 모두가 그 규탄이 두려워 공기에 더욱 강하게 속박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공기가 사회를 지배하는 분위기에는 메이지(明治) 시대의 잘못된 계몽주의적 행태에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 '영(靈)의 지배'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무지몽매하고 야만적인 것으로 여겨 '없는 것'처럼 치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 그러나 '없는 셈' 쳤을 뿐 실제 '공기의 지배'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똑바로 상황을 바라보지 못하고 공기의 지배가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가 '공기'를 연구하게 된 것은 공기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결국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없애버린' 것이 일단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그 실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 투명한 물로 변해 우리를 구속하고 있다. (중략) 그것을 새롭게 파악하는 것, 그것만이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이다.(중략) 사람은 '공기'를 진정으로 파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기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다.".
현직 외교관인 박용민씨가 번역했다. 296쪽. 1만6천800원.
zitro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