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서 '자치통감' 이어 '속자치통감' 번역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우리는 중국 역사에서 송나라 다음에 원나라가 등장했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송과 원 사이에는 거란족이 세운 요와 여진족이 만든 금이 있어요. 동아시아 역사에서 한족(漢族)이 중심이라는 생각은 허상입니다."
중국 이외 지역에서 최초로 중국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번역한 권중달 중앙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 번역이라는 대장정에 나섰다. 그 첫 번째 결실로 500쪽이 넘는 '속자치통감' 번역서 1∼2권이 최근 출간됐다.
권 교수는 8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속자치통감에는 송이 건국한 960년부터 명이 원을 멸망시킨 1368년까지 400여 년간의 역사가 기술됐다"며 "이 시기에 동아시아 세계는 한족이 아니라 북방민족이 주도했다"고 강조했다.
북송 시대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쓴 자치통감은 전국시대에 속하는 주 위열왕(威烈王) 23년(기원전 403년)부터 송이 건국되기 전까지의 역사를 294권에 실은 방대한 책이다. 청나라 학자 필원(畢沅·1730∼1797)이 지은 속자치통감도 분량이 220권에 이른다.
자타가 인정하는 '자치통감의 대부'인 권 교수가 속자치통감 번역을 시작한 이유는 이 책에 우리나라의 역사 인식을 바꿀 수 있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또 한문에 익숙하지 않아 원서를 잘 읽지 못하는 후학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친 학자 주희(朱熹·1130∼1200)가 살던 때 남송은 중원을 금에 빼앗겼고 영토도 작았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주희는 혈통주의를 내세워 남송을 세운 한족은 오랑캐보다 힘은 약하지만 문화적 수준은 높다고 역설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자학의 병폐가 한반도에 이식돼 지금도 우리는 아시아를 너무 좁게 보고 있다"며 "한족이 중심이고 주변에 있는 민족은 오랑캐라는 인식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속자치통감이 완성된 시기에 중국 땅의 주인은 만주족이었다. 당시에는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고증학(考證學)이 유행했다.
권 교수는 "청대에는 역사가가 자신의 견해를 집어넣지 않았고, 사실만 이야기하면 독자가 알아서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속자치통감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중국 역사에서 다양한 민족이 공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자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모두 중국사로 편입하려 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응할 논리도 속자치통감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한족을 중심으로 이외 종족을 다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하는 명저인 속자치통감을 보면 아시아에서 한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북공정의 바탕이 되는 한족 중심 이론은 사실이 아닌 셈이죠."
자치통감 번역에 10여 년을 매달린 권 교수는 속자치통감은 5년 안에 번역을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물의 생몰년과 옛 지명의 현재 명칭을 찾아서 기재하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를 직접 그려 넣다 보니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린다고 털어놨다.
권 교수는 자치통감에 이어 속자치통감도 부인과 상의한 뒤 퇴직금을 투자해 세운 삼화출판사에서 간행했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도 책 판매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책정된 도서 가격은 2만8천원으로, 들인 공력에 비하면 비싸지 않은 편이다.
권 교수는 "양장으로 내려고 했는데, 가격이 너무 올라갈 것 같아서 포기했다"며 "역사 공부를 한 사람으로서 후배들을 위해 번역을 시작한 만큼 잘 마무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