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내달 4일 총선을 앞두고 이탈리아에 파시즘 정서가 급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집권 민주당 소속의 그라치아노 델리오 교통부 장관은 7일(현지시간) 일간 라 레푸블리카에 실린 인터뷰에서 "마체라타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사건들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은 파시즘의 귀환에 문을 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이탈리아 중부 마체라타에서 흑인들을 조준 사격해 나이지리아, 가나, 감비아, 말리 등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6명을 다치게 한 극우 청년 루카 트라이니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
트라이니는 마체라타에서 지난 주 토막 시신으로 발견된 18세 이탈리아 소녀 파멜라 마스트로피에트로를 살해한 용의자로 마약 밀매업자로 알려진 29세의 나이지리아 출신 난민이 지목되자, 이에 대한 복수로 흑인만을 조준해 사격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작년 6월 열린 지방선거에 극우정당 동맹당의 전신인 북부동맹(LN) 소속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으며, 이번 범행 직후 파시즘식 경례를 하는 등 파시즘 추종자로 밝혀졌다.
델리오 장관은 "이탈리아 소녀가 살해된 것은 끔찍한 일임은 사실이지만, 이 때문에 난민들을 증오하고 복수를 위해 무자비하게 난민들을 향해 총을 겨누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며 트라이니를 영웅시하는 일각의 분위기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트라이니의 변호인은 앞서 전날 "마체라타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연대의 수준은 놀라울 정도"라며 "루카에 대한 지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길을 가지 못할 지경"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건 직후 로마 북부의 중심가인 밀비오 다리 인근에는 '루카 트라이니에게 영광을'이라는 현수막이 붙는 등 중범죄자인 트라이니를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전국적으로 심심치 않게 표출되고 있는 형편이다.
역시 민주당 진영의 안드레아 오를란도 법무부 장관은 인종 범죄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이날 트라이니가 쏜 총탄에 다친 흑인들이 입원해 있는 마체라타의 병원을 전격 방문해 부상자들을 위로했다.
그는 트라이니가 사건 직후 이탈리아 국기를 목에 두르고 체포된 것을 지칭하며 "그는 이탈리아 삼색기를 더럽히는 미친 짓을 저질렀다"며 "장관으로서 우리의 국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이번 총격 사건으로 극적으로 드러나긴 했으나, 이탈리아 사회 일각의 파시즘에 대한 향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2014년 이래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60만명이 넘는 난민이 쏟아져 들어온 것과 맞물려 고조된 반(反)이민, 반(反)난민 정서와 결합하며 극우 파시스트 철학에 동조하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작년 11월 로마 인근의 오스티아에서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반(反)난민을 주장하는 네오 파시즘 성향의 단체 카사 파운드가 무려 9%가량을 득표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좌파 진영은 2차대전 종전 직전 연합군에 패해 도주하던 무솔리니가 처형된 지 70여 년이 지났으나 이처럼 최근 몇 년 새 파시즘을 옹호하는 정서가 눈에 띄게 힘을 얻자 작년 9월 하원에서 파시즘식 경례를 하는 등 파시즘 또는 나치즘과 관련한 선전 활동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법안을 도입했으나, 이 법안은 상원 처리가 불발되며 결국 최종 입법 관문을 넘지 못했다.
한편, 이탈리아 극장가에서 최근 무솔리니의 환생을 상상한 코믹 영화 '소노 토르나토'(Sono Tornato·내가 돌아왔다)가 개봉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파시즘에 대한 향수가 강해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히틀러의 귀환을 그린 2015년 독일 영화 '그가 돌아왔다'를 이탈리아 버전으로 리메이크 한 이 영화는 현대 이탈리아 사회에 무솔리니가 부활한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림으로써 이탈리아 사회를 풍자했다.
이 영화의 감독 루카 미니에로는 지난 주 무솔리니가 살던 저택인 로마 시내의 빌라 토를로니아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독일과 달리 이탈리아는 무솔리니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며 "만약 무솔리니가 지금 복귀한다면 비록 2년 후 실각할 수 있을지라도, 당장 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치분석가인 페데리코 산티는 "무솔리니의 부활을 가정한 영화의 개봉은 오늘날 이탈리아 사회에 내재한 상당한 모순들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풀이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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