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인권단체·난민 주장…전문가 "관심 덜 끄는 학살"
바나나 줄기 연명…"느리면서 더 잔인해" 피골상접 절규
(서울=연합뉴스) 민영규 기자 = 지난해 8월 불교국가인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이슬람교도인 로힝야족의 반군단체가 핍박받는 동족을 보호하겠다며 경찰초소 30여 곳을 습격한 후 미얀마군은 대대적인 소탕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 대량학살, 강간, 마을을 통째로 불태우는 이른바 '인종청소'가 자행돼 로힝야족 7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란했다.
당연히 미얀마를 비난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커졌고, 미얀마는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을 뿐이라며 인종청소 의혹을 부인했다.
이런 가운데 미얀마군과 불교도가 로힝야족을 사실상 감금해 굶겨 죽이려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식량 공급 차단이 로힝야족을 몰아내기 위한 새로운 무기가 된 것이다.
최근 방글라데시로 피란한 난민 10여 명을 인터뷰한 AP 통신은 7일(현지시간) 라카인주에서 벌어지는 로힝야족의 심각한 기아 상황을 전했다.
군인들에 의해 마을에, 때로는 집에 사실상 구금된 로힝야족은 농경, 어로, 산림, 무역, 노동 등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난민들은 밝혔다.
난민들은 지난해 11∼12월 수확 철에 군의 지원을 받는 불교도가 자신들의 논에서 벼를 걷어가고, 소를 가져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얀마 국경을 넘은 압둘 고니(25)는 "불법 어로를 했다며 죽임을 당한 로힝야족의 시신들이 강물에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여기 있다가는 가족이 모두 죽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얀마 정부가 가족을 한꺼번에 굶겨 죽이려고 한다"면서 "나가지 않으면 굶겨 죽이겠다는 압박이 점점 커졌다"고 주장했다.
방글라데시로 몸을 피하기 전에는 바나나 나무줄기로 허기를 채웠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날도 있었다는 고니는 "감옥에 있는 사람도 하루 두 끼는 먹는데 그보다 더 심각했다"고 말했다.
닷새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도 있었다는 50대 난민은 "그들이 자행하는 짓은 더 느리면서 더 잔인해졌다"면서 "차라리 총으로 쏴 죽이는 게 낫겠다"는 말로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표현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미얀마군이 지난해 11∼12월 로힝야족의 수확을 막았다고 밝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식량, 연료에 대한 접근 부족으로 로힝야족의 기아가 가중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의 한 의사는 "새로 넘어온 로힝야족은, 특히 어린이와 여성의 경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비타민 결핍과 피골이 상접할 정도의 심각한 영양실조를 보인다"면서 "나치 캠프를 연상시킨다"고 심각성을 강조했다.
AP 통신은 로힝야족이 많이 사는 라카인주 북부에 대한 언론의 접근이 차단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아에 허덕이는지, 이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고 보도했다.
구호단체들은 로힝야족은 휴대전화 카드도 살 수 없어 외부와의 통신을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2년부터 로힝야족을 연구한 영국 런던 퀸마리대의 국가범죄 전문가인 토머스 맥마누스는 "라카인주의 불교도들은 이슬람교도인 로힝야족 수가 자기들보다 많아지자 식량 원조를 막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8월 이후 하루 거의 24시간 통행금지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지역을 봉쇄하면서 식량 등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덜 끌며 천천히 진행하는 가장 쉬운 집단학살"이라고 비판했다.
youngky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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