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제주 여행 물거품, 렌터카 길바닥에 두고 떠나
교래리 등 중산간 마을 관광객들 일주일간 고립되기도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아~ 정말 눈에 질려버렸어요!"
친구들과 함께 제주에 놀러 온 이다빈(22·여)씨는 8일 아침 부산으로 돌아가려다 비행기가 지연되자 공항 로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전 8시 30분 출발하려던 비행기가 기습 폭설 때문에 오후 1시 30분으로 미뤄졌는데, 또다시 미뤄진 것이다.
지난 5일 제주에 온 이씨와 친구들은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부산에서 와서 그런지 처음에는 눈이 반가웠다.
그러나 상황은 금세 돌변했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 때문에 도로는 통제되고, 바닷길까지 막혀버려 꿈꾸던 여행길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씨는 "기사와 방송에서만 봤던 항공편 결항·지연 상황이 제게도 닥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이제는 눈이 싫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엿새째 내린 눈으로 제주국제공항은 또다시 오전 한때 항공기 이·착륙이 전면 중단되는 등 공항 이용객들의 불편이 이어지고 있었다.
공항 대합실에서 만난 전지훈련 온 대학 축구선수들의 표정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3주간 서귀포에서 훈련한 선수들은 제주의 한파와 폭설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따뜻한 제주에서 훈련하며 기량을 키우려 했지만, 1월에 이어 2월에도 강추위가 몰아쳐 무척이나 고생한 것이다.
경희대 축구부 안성민(20)씨는 "눈이 너무 많이 왔고, 제주의 날씨가 생각보다 훨씬 추웠다"고 했다.
다음에도 제주에 훈련 오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글쎄요"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들은 오후 2시 항공편으로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오후 4시로 다시 미뤄졌다.
1층과 2층 공항 안내 데스크에는 항공편 운항 여부를 묻는 관광객과 도민들의 발길이 수시로 이어졌다.
안내 데스크에서 4년간 자원봉사한 양모(52)씨는 "폭설로 공항에 갇히는 게 아니냐"며 공포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안씨는 "50년 넘게 제주에 산 제주사람인 저도 이렇게 눈이 오는 건 처음 보는데 관광객들은 오죽하겠느냐"며 "정말 하늘이 터져버린 것 같다"고 정색했다.
공항 내 렌터카 업체들도 폭설 탓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도내 110여개 업체당 하루에 2∼3건씩 '눈에 갇혀 운전하지 못하겠다'고 호소하며 차를 도로에 세워두고 공항으로 오는 관광객들이 있기 때문이다.
렌터카 회사 영업직원 김모씨는 "도로에 방치된 차들은 이번 폭설 사태가 끝이 나야만 가지러 갈 수 있다"며 "견인 비용이 건당 30만원에 달해 도저히 이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폭설 때문에 이제는 겁이 나서 손님이 와도 차를 빌려주지도 못할 정도"라며 "이번 주말에 또 눈이 온다고 하는데 정말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날 제주시 내 주요 도로도 차량이 엉켜 출근 대란이 빚어졌다.
차들은 엉금엉금 거북이 운행을 했고, 차량 여러 대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멈춰 섰다.
움직이지 못하는 차량을 피해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차와 이를 향해 경적을 울리는 차들로 도로가 들끓었다.
운전자 이모(53)씨는 "대설특보가 해제돼 전날 밤 월동장구를 풀어버렸다"며 "사람들이 출근하고 나서야 대설특보를 다시 내리면 어찌하느냐"며 기상청을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중산간 마을은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산굼부리 관광지와 토종닭 특구로 유명한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등은 또다시 폭설로 고립될 지경이다.
전날 대설특보가 해제돼 제설작업에 박차를 가하며 대부분 마무리했지만, 폭설이 내리면서 망연자실한 상황이다.
양창호 교래리장은 "지역 내 한 펜션에는 관광객이 일주일째 집에 가지 못하고 고립돼 있다"며 "포크레인으로 길을 내면서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 제설작업을 마무리했는데 또다시 눈이 내리는 통에 앞으로 새로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도내 골프장 관계자들도 "올겨울 폭설이 내리고 쌓인 눈이 녹지도 않아서 개점휴업 상태"라며 폭설 때문에 근심이 많다고 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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