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5인의 작가'전 43년만에 재현·아시아소사이어티아트갈라상
"올해 중반부터 직선 작업 중단…조각보 작업 선보일 것"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저기 모자 쓴 녀석이 둘째 녀석이죠."
7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보문화재단에서 만난 원로작가 박서보(87)는 작업실에 걸린 액자 하나를 가리켰다. 고색창연한 느낌의 옛 사진에는 서너 살 무렵의 남자아이가 형과 함께 엄마 품에 안겨 웃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박서보 화업의 상징이 된 '묘법'(描法)은 1967년 둘째 아들의 낙서에서 우연히 시작됐다. 공책에 글씨 비슷한 것을 써넣으려고 애쓰던 둘째는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요령이 부족한 탓에 공책이 찢기고 말았고, 화가 난 아들은 종내에는 그 위를 연필로 마구 그어 버렸다. "네모난 공간 안에 글자를 써넣으려고 하는 것은 목적성이죠. 결국에는 연필로 마구 칠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내가 찾으려고 하던 것이 바로 저것이구나, 체념이고 비우는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죠."
'묘법'과 반세기를 함께 한 박서보는 올해 겹경사를 맞았다. 다음 달 초 일본의 유서 깊은 도쿄화랑에서 1975년 그를 비롯한 국내 작가 5명이 참여한 전시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이 43년 만에 재현된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에는 아트바젤 홍콩에 즈음해 열리는 '아시아소사이어티 아트갈라' 올해의 작가상 시상식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갤러리 관장, 큐레이터, 작가들이 모인 가운데 아시아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도쿄 전시와 수상을 기념해 만난 작가는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한다"고 말했다.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는 건, 작가가 자신을 모방하기 시작한다는 것이거든요. '기'(氣)라는 게 타락하는 셈입니다."
아들의 낙서에서 시작된 '연필 묘법'으로 출발했지만, '묘법'이라는 이름 안에서 부단히 변화를 추구한 것도 그러한 철학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는 종이 대신 한지를 이용해 대형 화면에 선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냈고, 2000년대부터는 모노톤을 벗어나 밝고 화려한 색채들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변화에 실패하지 않는 이유는 현재 작업을 극한까지 밀면서, 한편으로는 4~5년간 다음 작업을 동시에 시도하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말에서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아흔이 머지않은 나이임에도 그는 직선 작업을 올해 중반부터 중단하고 새로운 작업을 선보일 계획에 바빴다. "이제 대작을 못 해요. 이쪽 다리가 시원찮기도 해서 일주일에 물리치료를 두 차례씩이나 받습니다. 한지를 조각보처럼, 작은 토막토막 이어붙여 나가는 작업을 이제 보여줄 예정입니다."
지난해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작가의 흰색 묘법 시리즈는 역대 최고가인 14억7천여만원에 낙찰됐다. 그 외 수많은 경매에서도 요즘 박서보 작품은 수억대에 거래되고 있다.
팔십이 넘은 뒤에야 미술시장의 환대를 받은 작가는 "그때 (단색화) 작가들끼리 그림은 안 팔리는데 재료값은 엄청나게 들어가니 '그림 안 그리면 돈 벌겠다'는 말을 주고받곤 했다"며 허허 웃었다.
작가는 미술시장에서 상한가인 단색화를 흉내 낸 작품이 늘어나는 점에 "아주 불쾌하다"며 경계했다. "나는 평생 남과 달라지려고 애를 썼습니다. 내 작품과 비슷하게만 생긴 것이 나왔어도 안 했을 겁니다. '수신'의 도구로 택한다는 것은 단색화의 공통된 정신이니 받아들일 수 있지만, 방법론에서 전혀 달라야 합니다."
지난 60여 년을 돌아보던 작가는 후배 작가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절대 곁눈질하지 말고, 남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지 말고, 앞만 보고 나아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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