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태양 빛이 서서히 밝아지는 지구의 아침.
갈라파고스의 화산섬에서 갓 부화한 바다 이구아나 새끼들이 모래 위로 머리를 조심스럽게 내민다. 주변에는 수십 마리의 뱀(레이서 스네이크)들이 고개를 바짝 치켜들었다.
위험을 직감하고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는 새끼 이구아나와 아가리를 벌리며 이구아나를 쫓는 뱀들의 추격전은 마치 첩보영화를 보는 듯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지구:놀라운 하루'는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동물의 하루를 아침, 낮, 저녁, 밤으로 나누어 담았다.
중국 쓰촨 성에서 서식하는 엄마 대왕판다는 온종일 대나무를 입에 달고 산다. 하루 24시간 중 14시간은 대나무를 먹어야 새끼에게 젖을 물릴 수 있다.
뿔처럼 긴 코를 가진 일각고래들은 북극의 태양이 얼음을 녹여 길을 터주자 모처럼 항해를 떠난다.
태양 볕이 뜨거운 한낮. 아프리카 사막에서는 온순한 줄만 알았던 기린들의 영역싸움이 한창이다. 어린 기린이 나이 든 기린에게 다가가 싸움을 건다. 목을 있는 힘껏 돌렸다가 튕기기며 공격을 주고받더니 결국 어린 기린이 쓰러지고 만다. 어린 기린은 쓸쓸히 사막으로 발길을 돌린다.
바닷속 향유 고래가족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가족끼리 모여 똑바로 서서 한가로이 낮잠을 즐긴다. 피그미세발가락 나무늘보는 코를 골며 잠을 자다 암컷이 부르는 소리에 슬며시 눈을 뜬다.
숲 속의 갈색 큰 곰은 혼자서는 가려운 곳을 긁지 못한다. 적당한 나무를 찾아 서서 등을 비비는 모습은 마치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듯 보여 웃음을 자아낸다.
이 다큐는 낮과 밤의 리듬에 맞춰 순응하며 사는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과 자연이 부리는 황홀한 마법 같은 광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지구의 소중함과 공존을 말한다. 태양 주위를 돌며 자전하는 지구가 얼마나 운이 좋은 행성인지, 그곳에 사는 인간과 동물은 얼마나 축복받은 생명체인지를 일깨워준다.
BBC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2007년 '지구' 이후 10여 년 만에 새로 내놓은 작품이다. 전 세계 22개국을 돌며 38종의 다양한 생명체들을 포착했다. 촬영 기간 만 142일, 제작 기간은 3년이 걸렸다.
가는 데만 7일이 걸리는 화산섬 자보도프스키 섬에 들어가 다큐멘터리 최초로 턱끈펭귄 150만 마리의 서식지를 화면에 담았다. 드론 장비 200여 대를 동원해 포착한 흰머리랑구르 원숭이의 모습도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1초에 1천 프레임 이상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 '팬텀 플렉스 4K'로 300만 마리의 하루살이들이 한꺼번에 강 위를 날아오르는 장대한 광경을 담아내기도 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의 배우 이제훈이 내레이션을 맡아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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