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입력절차 복잡하고 수정하기도 어려워…의료진 불만 속출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이른바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 일주일 만에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하 국생연)이 마련한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이 사실상 쓸 수 없는 수준이라 판단해 온라인 등록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서울대병원은 당분간 관련 서류를 우편으로 접수할 방침이다.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은 의료진들이 환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연명의료 이행 여부 등을 전산입력하는 시스템이다. 법 시행일인 4일 0시 오픈했다.
그러나 시스템이 오픈하자마자 의료진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당장 전산입력 절차와 요령이 까다로워 혼란스럽다는 이유에서다. 현장에서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도 시범사업 기간에 '가오픈'해 현장에서 충분히 적응할 시간을 줬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에는 환자의 '서명'이 입력되지 않기 때문에 전산입력과는 별개로 서류를 스캔한 PDF 파일을 국생연에 보내야 하고, 입력 뒤 하나라도 수정하려면 공문을 보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는 게 의료진들의 주장이다.
환자의 서명을 수기가 아닌 태블릿PC로 받아 입력하려고 해도 시스템 구동이 가능한 특정 회사의 기기를 준비해야 해 불편이 작지 않다.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과 병원 전산시스템이 연동되지 않는 점도 큰 문제다.
각 병원의 전산시스템과 연동되지 않으므로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는지를 의료진이 별도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진들은 분초를 다투는 긴급상황에서 환자가 관련 서류를 제출했는지를 전산으로 확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서울대병원은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이 안정화되기까지 전산등록을 보류하고, 이행서 사본을 우편으로 제출키로 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연명의료결정법 준비위원회 위원장(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은 "전산입력을 '보이콧'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해보려다 '포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 사람 서류 작업에만 30분~1시간이 걸리는데 그마저도 수정하려면 공문을 보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며 "그 시간에 한 명의 환자라도 더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권 위원장은 "이게 정말 환자를 위한 시스템인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 외에도 법 규정 자체가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계속 나온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때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하는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가족이 환자 대신 서명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서류 발급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환자가 사망한 경우도 발생했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보호자가 가족임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려다 환자의 임종을 못 지킨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져 항의를 받기도 했다"며 "직계가족을 모두 확인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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