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놓치지 않고 목표 달성하는 패기의 10대
(강릉=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겁없는 막내' 황대헌(19·부흥고)이 드디어 첫 메달을 목에 걸었다.
황대헌은 22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결승에서 중국 우다징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생애 첫 올림픽에 출전한 황대헌의 첫 메달이다.
황대헌은 역대 최강 전력이라고 자부하는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에서도 가장 메달 기대를 모은 선수였다.
그러나 올림픽 무대에서 황대헌에게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첫 1,500m 결승에서 넘어지며 눈앞에서 메달을 놓치는 아픔을 겪었다.
두 번째 1,000m 레이스에선 준준결승에서 우리 선수 3명이 함께 뛴 대진 불운 속에 결승 지점 앞에서 넘어졌고 실격됐다.
두 번 넘어진 황대헌은 그러나 곧바로 벌떡 일어섰고, 세 번째 도전에선 정상에 우뚝 섰다.
"경험 부족은 패기로 극복하겠다"던 '무서운 막내'는 그 넘치는 패기로 아픔을 딛고 승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황대헌은 누구보다도 성취욕과 의지가 강했다. 하고 싶은 것은 꼭 이루고 마는 성격이었다.
5살 때 황대헌은 가족들과 빙상장에 놀러 갔다가 스케이트를 처음 접했다.
스케이트를 타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꼭 타고 싶다고 떼를 썼다. 누군가가 빙상장에 들어가서 넘어지지 않고 서 있기만 하면 태워주겠다고 하자 어린 황대헌은 얼음판에 들어가 꼿꼿하게 서 있었다고 한다.
그날로 바로 스케이트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숙제로 그린 '나의 꿈' 그림에서 황대헌은 "나의 꿈 : 숏트랙(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열심히 연습"이라고 썼다.
안양 안일초등학교와 부림중학교 재학 시절엔 전국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국가대표의 꿈에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갔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과 이제는 고인이 된 노진규(1992∼2016)가 꿈을 향해 가는 황대헌의 롤모델이었다.
7살 황대헌의 당찬 포부가 실현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6년이었다.
운명의 여신이 황대헌의 노력을 알아보기라도 한 듯 기회가 연이어 찾아왔다.
황대헌은 2016-2017시즌 ISU 월드컵 시리즈를 앞두고 발표된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선발전 이후 불법도박혐의로 기소된 남자 선수 3명이 대표팀에서 제외되고 차순위였던 황대헌이 극적으로 8명 대표팀의 막차를 탄 것이었다.
실제 월드컵 출전 엔트리에선 후순위였으나 박세영과 서이라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면서 후보선수였던 황대헌에게까지 기회가 왔다.
그는 힘겹게 얻은 귀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차 월드컵 1,000m 준준결승에서 아직 깨지지 않은 1분20초875의 세계신기록을 작성했고,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린 6차 대회에선 1,000m 금메달을 차지했다.
가능성을 증명한 황대헌은 지난해 4월 대표 선발전에서 임효준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대체선수'나 '후보선수'가 아닌 남자 대표팀의 에이스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네 차례의 월드컵에서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건장한 체격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스피드가 강점인 황대헌은 음악을 즐겨 듣고, 평상시엔 말도 많고 장난도 많이 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그러나 빙판 위에 올라서면 180도 변해 매서운 눈빛으로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준다.
"성실하게 노력하고 열심히 했던 선수이자, 쇼트트랙 하면 떠오르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황대헌은 남자 쇼트트랙의 부활을 알린 주역 중 하나로 오래 기억에 남게 됐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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