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당원 공무원 등에 대해서도 전방위 '반부패 숙청'의 길 열어
(서울=연합뉴스) 권영석 기자 = 중국이 반부패 숙청을 합법화하기 위해 다음 달 도입할 예정인 '유치'(留置) 조치가 중국판 '스페인 종교재판'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서방 법률 전문가들이 우려했다.
스페인 종교재판은 지난 15세기 가톨릭 왕들이 통치력 강화를 위해 과거 신앙을 은밀하게 믿는 이교도 30만여 명을 붙잡아 고문하고 재산을 몰수하는가 하면 3만2천여 명을 화형에 처한 사건을 일컫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초법적인 '쌍규'(雙規) 조치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이를 대체할 합법적인 유치 제도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쌍규는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비리 혐의 당원을 정식으로 형사 입건하기 전에 구금 상태에서 조사하는 관행으로 영장심사나 조사 기간 제한 등이 보장되지 않아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쌍규를 대신해 새로 마련하고 있는 유치 조치도 피의자들의 변호인 접견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물론 구금 기간도 국가감찰위원회가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등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다.
더구나 새로 탄생할 국가감찰위는 공산당 당원만을 대상으로 한 중앙기율검사위와는 달리 당원이 아닌 공무원, 국유기업 임직원, 판사, 검사, 의사, 교수, 유치원 교사 등 공공인사 수천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등 적용 범위가 넓다.
이에 따라 앞으로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공무원들의 경우 '형사절차법'에 따라 변호인 접견권 등 기본적인 인권보호 조치를 적용받는 살인 혐의자에 비해서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
중국 법률제도 전문가인 제롬 코언 뉴욕대 교수는 "이번 제도 변경은 변호인 접견권, 고문받지 않을 권리 등 피고인에 대한 법적 보호제도 수립을 위해 지난 수십년간 기울여온 노력을 '완전'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언 교수는 "정치 지도자들과 정부 간부들, 재계 임직원, 판검사, 변호사,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교수들은 자의적인 중국 제도의 다음 희생자가 될 것으로 보고 두려워하고 있다"며 "이는 중국판 '스페인 종교재판'"이라고 강조했다.
마화이더(馬懷德) 중국 정법대학 부교장은 국가감찰위는 국가와 당의 감찰 기능을 통합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유치 조치가 입법화되면 형사절차법에 따른 피의자 보호제도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버클리대 법학대학원의 스탠리 루브만 교수는 "이는 당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며 당에 대한 사법권의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새 제도를 마련하게 되면 반부패 작업이 질서 있게 추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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