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연합뉴스) 이웅 기자 = 마음이 급했다. 강릉 컬링 경기장 앞에서 안 잡히는 택시를 겨우 잡았는데 인터뷰 시간에 늦을 듯했다.
그때 문득 그 드론을 꼭 한번 날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 개회식 때 겨울 밤하늘의 화려한 군무로 세계인을 경탄시켰던 바로 인텔의 '슈팅스타'를 실내에서 살짝 호버링만 시킬 수 있어도…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드론 마니아는 아니지만 2~3년 전부터 드론에 재미를 붙여 나름 조종기는 좀 잡아본 터다.
올림픽 기간에만 운영한다는 인텔의 강릉 사무실은 의외로 호젓한 동해안 바닷가 솔밭에 있었다. 외관은 분위기 있는 카페 같았지만, 들어서자 인테리어가 아주 잘 된 저택을 방문한 듯 고급스럽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3층까지 계단을 오르는데 말소리가 들렸다.
인텔의 홍보 영상에서 봤던 인텔의 드론 라이트쇼 책임자 나탈리 청이 드론을 손에 든 채 말하고 있었다. 드론쇼의 기술적인 배경을 설명하는데 요 며칠 사이 언론의 관심이 폭발하면서 어지간한 내용은 이미 기사화돼 관심을 끌진 못했다.
다만 "개회식 때 드론 쇼는 최초 시도로 한 번에 성공한 것"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기록을 남기기 위한 기네스 요원들도 현장에서 참관했다고 하니 안 믿을 수 없다.
말로만 듣던 인텔의 '클라우드 드론 비행 기술'이 경지에 도달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회식 때 경탄하고는 다음날 녹화된 영상이었다는 말에 속은 것 같았던 기분도 조금 보상이 되는 듯했다.
다른 설명은 듣는둥 마는둥 옆에 놓인 슈팅스타를 들고 요모조모 뜯어봤다. 384x384x93㎜, 330g, 회전 직경은 6인치, 비행시간 5~8분, 최대 항속거리 1.5㎞, 최대 속도 3m/s.
대충 이런 스펙인데, 손에 쥐어보니 생각보다 가벼운 느낌이었고 탄력적인 보호용 케이지(cage)가 기체를 빈틈없이 뒤덮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촬영용이 아니라 고급기종이 갖춘 촬영 장비는 없었고, 상단의 인텔 고로와 하단의 큰 LED 라이트가 강조돼 보였다.
하지만 솔직히 인텔 로고만 빼면 시중에 파는 10만~20만원대의 일반 쿼드콥터(날개가 4개인 드론)와 다를 바 없을 만큼, '인텔 인사이드' 슈팅스타의 자태는 겸손했다. 나중에 제조단가를 물었지만 알려주진 않았다.
개회식 현장에서 왜 라이브 쇼를 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공간과 바람 때문이라고 했다. 개회식 때 하늘을 수놓았던 스노보드 선수와 오륜기는 대략 가로 세로 153x100m 크기였다고 한다.
1천218개의 드론을 한 명이 조종했다는 게 화제가 됐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조종은 내장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이뤄진 것이었다. 드론만 있으면 1만 대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드디어 인터뷰가 끝나고, 현장의 인텔 직원에게 한번만 딱 한번만 슈팅스타를 가동시켜 보고 싶다고 사정했다.
그랬더니 "내부 규정상으로 불가한데 비치된 조종기도 없다"는 허망한 답이 돌아왔다.
일각에선 개회식 최고의 하이라이트를 외국 기업의 기술에 의존한 것을 아쉬워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 기술이 부족해 인텔의 도움을 받았다기보다 올림픽 공식후원사인 인텔의 필요에 의해 드론쇼가 개회식에 끼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실제로 인텔이 이번 드론쇼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작년 6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제휴를 맺으면서라고 했다.
인텔이 상설 운영하는 드론 라이트쇼 팀이 개회식 드론쇼를 맡았는데 영화 '원더우먼' 개봉 행사나 슈퍼볼 개막 행사 같은 다른 행사도 많이 뛴다고 했다. 2년 전 100대로 처음 쇼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보통 300대로 쇼를 펼친다고 했다.
어쩌면 이번 드론쇼는 또 다른 올림픽 후원사인 코카콜라의 멋진 홍보 영상이나 시설이 올림픽 주변을 장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30년 가까이 전 세계 PC 산업을 지배했으나, 모바일 시대로 넘어오면서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에선 최강이던 인텔의 기술력이 저전력, 고효율의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선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인텔이 차세대 사업으로 눈을 돌린 곳이 바로 드론이다. 주력인 반도체와는 거리가 있지만 여러모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개회식의 성공으로 인텔은 자사의 새로운 비전을 전 세계에 알리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인텔은 여세를 몰아 올림픽 기간 내내 드론쇼로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다. 절호의 기회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인텔은 대회 기간 메달 시상식이 열리는 평창 올림픽플라자에서 매일 밤 드론쇼를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전달했다고 한다.
드론쇼는 지난 13일 밤부터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바람 때문에 연기했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15일 밤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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