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경영·'먹튀 논란' 속 정부에 공 넘긴 외국 자본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한국지엠(GM)의 경영 정상화 과정이 과거 큰 후유증을 낳은 쌍용차 사례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외국계 자본에 인수됐다가 경쟁력 약화로 경영난에 처하고, 결국 정부에 공을 떠넘긴 모습이 모두 닮았다는 것이다. 만일 제너럴모터스(GM)가 발을 뺄 경우 미칠 파장은 훨씬 클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대우그룹 몰락과 함께 1999년 워크아웃에 돌입한 쌍용차는 2004년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됐다. 당시 상하이차는 쌍용차 지분 48.9%를 5천900억원에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이후 경기 악화와 판매 부진으로 쌍용차는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했다. 유동성 공급을 약속하던 상하이차는 2008년 12월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2대 주주였던 산업은행과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대주주인 상하이차의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지원을 거부했고, 결국 상하이차는 2009년 1월 쌍용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상하이차는 약 6천억원의 투자를 통해 가치가 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기반 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에 쌍용차가 파산해 투자비를 모두 날리더라도 남는 장사를 한 셈이었다.
이 과정에서 상하이차가 쌍용차 인수 후 매년 3천억원씩 4년간 총 1조2천억원을 연구개발(R&D) 등에 지원하기로 약속해 놓고 이행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
SUV 판매 급감으로 인해 이미 1년 전부터 쌍용차가 위기에 처했음에도 이렇다 할 지원책을 내놓지 않은 채 오히려 핵심 연구원들을 중국 본사로 빼돌렸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한국GM이 쌍용차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모양새다.
한국GM의 모태인 대우자동차는 경영 악화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2000년 11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1년 GM에 매각됐다. 이후 사명을 한국GM으로 바꾸고 쉐보레 브랜드를 도입하며 재기를 모색했다.
한동안 잘 나가는 듯했던 한국GM은 GM의 대대적인 글로벌 사업 재편과 함께 2013년부터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GM이 유럽, 인도,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주요 시장에서 줄줄이 철수하고 계열사 오펠 등을 매각하면서 주력인 수출 물량이 급격히 감소한 탓이다.
상하이차와 마찬가지로 대주주인 GM은 철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산업은행과 정부에 유상증자 참여 등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정부가 "GM이 어떤 내용의 신규 투자 계획을 들고 오느냐에 달렸다"고 말한 것은 쌍용차 때보다 지원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긴 하지만, 대주주의 책임을 먼저 요구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GM 역시 '먹튀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업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GM이 한국GM을 상대로 '고리대금' 장사를 해왔다거나, 부품·제품 거래 과정에서 한국GM이 손해를 보고 이익을 본사나 해외 GM 계열사에 몰아줬다는 등의 의혹이 제기된다.
특히 한국GM이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부담했음에도 이로 인해 형성된 무형자산은 모두 GM 본사의 몫이 됐다는 지적과 관련해선 금융감독원이 연구개발비를 부풀린 정황이 있는지 조사에 나선 상황이다.
2016년 기준 한국GM이 연구개발비로 낸 돈은 6천140억원이다. 같은해 영업손실 규모인 5천220억원보다도 큰 액수다.
아울러 강성 노조 문화로 경영난 속에서도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점은 쌍용차 때부터 현재 한국GM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만일 정부 지원이 없다면 GM의 군산공장 폐쇄 이후 수순은 쌍용차와 유사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GM의 글로벌 경영 방침상 이미 경쟁력이 약화한 국내 생산 기지를 가차 없이 정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다만 GM 철수에 따른 파장은 국가 경제를 흔들 만큼 훨씬 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GM은 전체 고용자가 약 30만명에 이르는 '매머드 기업'으로 규모 면에서 쌍용차와 비교가 안 된다"며 "완전히 철수한다면 국가 경제성장률을 0.5% 낮출 만큼 수십 배 이상으로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r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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