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경북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하거나 중국발 미세먼지 농도가 심각할 때 아니면 그냥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도 긴급 재난문자는 우리에게는 친절한 안내 서비스 정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맞춰 한국을 찾은 선수단이나 관광객 등 일부 외국인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삐' 소리를 내며 긴박하게 전해지는 재난문자가 불안감을 넘어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긴급 재난문자가 평창올림픽을 찾은 선수와 언론인, 관람객 등 수천 명에게는 공포와 혼란 또는 단순히 짜증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긴급 재난문자가 미세먼지 농도나 날씨 관련 각종 주의보, 지진, 화재와 다른 위험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전한다고 설명하고 "한글을 알았더라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면서도 대다수 외국인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NYT에 따르면 지난 한 주에만 평창 일대에서 최소 14건의 긴급 재난문자가 들어왔고, 강릉 올림픽파크 일대에는 지난 14일 하루에만 8건의 긴급 재난문자가 들어왔다.
14일 6번째 긴급문자가 발송된 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내 식당에서는 긴급 재난문자 수신을 거부하기 위해 아이폰 설정을 바꾸는 방법을 묻고 답하는 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신문에 따르면 북핵 위기로 한반도 일대에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일부 선수들은 긴급 재난문자를 받을 때마다 상상이 불안을 증폭시켰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1월 미국 하와이 주에서 탄도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오경보 문자가 발송돼 주민과 관광객이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런 측면이 있다고 신문은 풀이했다.
노르웨이 컬링팀의 한 국가대표 선수는 "'이건 뭐지?' 싶었다"며 "우리는 북한 대표팀과 같은 건물에 있는데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부 선수들은 이해할 수 없는 한글 문자가 계속 들어오는 데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이런 태도는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긴급 문자가 숙면을 방해하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뉴질랜드 웰링턴 출신 스피드스케이터 피터 마이클(28)은 "긴급 재난문자가 나를 깨웠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휴대전화를 바닥에 던져버렸다"며 "만약 진짜 심각한 사태라면 누군가 나를 데리러 올 거라 생각했다"면서 다시 잠을 청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오전 5시께 발송된 포항 지진 관련 문자에 대해 벨기에 스피드스케이터 바르트 스윙스는 "자고 있다가 '이 문자가 왜 나를 깨우는 건가' 생각했다"며 "나는 읽을 수도 없고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설정해뒀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긴급 재난문자가 유용한 정보를 전하기는 하지만 올림픽 기간에라도 영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NYT는 각국 선수들이 긴급 재난문자에 어느 정도 무감각해지면서 실제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저 누군가가 알려주리라 생각하고 점점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미국 컬링 대표팀의 니나 로스는 미국 대표팀 보안요원이 불안감 또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문자에 관해 질의하는 선수들을 안내하고 있다며 "담당자가 만약 실제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에게 반드시 알리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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