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자 이상욱 "안정되게 인공장기 쓰는 시대 온다"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인공지능, 로봇, 인공장기, 사이보그 ….
SF영화나 만화 속에서 보던 일들이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훨씬 편리하게 하고, 수명을 연장하고,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면서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하고,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고, 빈부 격차가 훨씬 커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이야기도 들린다. 과연 미래라는 가면 속에는 어떤 모습이 담겨 있을까.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는 과학기술의 사회적인 영향과 문화적인 파급효과를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과학철학자'다. 이 교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후 과학철학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는 고도화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삶을 대체하는 것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불확실한 것이 훨씬 많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미래에 관한 비관적 견해가 실현될 수도 있지만 학자나 언론이 과장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학기술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과 사회, 문화에 미칠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과학철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 과학이론과 그 지식이 끼치는 사회적인 영향과 문화적인 파급효과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철학적으로 탐색하는 거죠.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과학이론이라면 실험이나 검증을 통해 상당히 '참'이 확보된 것이겠지만 그것이 완벽하게 '참'일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철학적 사고입니다. 어떤 과학이론이 완벽하게 참이라면 과학은 진보하지 않을 거예요. 과학이 계속 진보해왔다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과학이론도 놓친 것이 있고 오류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방증하죠.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이론의 믿을 만한 부분과 불완전한 것을 어떻게 판명할 수 있을까요. 또 우리는 무슨 근거로 참이라고 믿을까요.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실험해서 나온 결과를 확신하고,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을 곧바로 실재라고 믿어버리죠. 하지만 실재와 현상은 다릅니다. 빨간 장미의 빨간색은 현상이에요. 그런데 빨간 장미는 빨갛지 않기 때문에 빨갛게 보이는 거예요. 다른 스펙트럼의 빛은 흡수하고 빨간색만 반사하기 때문에 빨갛게 보이는 거죠.
이렇게 현상과 실재는 크게 다를 수 있어요. 과학철학의 한 분야는 바로 과학에 대한 이런 식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일반인에게 더 흥미로운 과학철학의 주제는 윤리적, 사회적인 문제죠. 예를 들어 게임중독이 사회적 문제가 됐을 때 과학철학자는 '도대체 중독된다는 것이 뭔가'를 묻습니다.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중독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모두 컴퓨터나 휴대전화 중독이겠죠. 뭐가 더 있어야 중독일까요. 대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가치평가가 개입합니다. 결국 중독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그것을 다루는가의 문제와 사회가 그것을 얼마나 정상적으로 보는가의 문제입니다. 게임은 중독이고 컴퓨터나 휴대전화는 중독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재미있는 것은 옛날에 문제가 많다고 했던 기술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면 그 기술을 당연시한다는 거죠. 그러면 모든 기술은 익숙해지기 나름일까요. 그렇지도 않죠. 수많은 과학기술 중에서 익숙해진 기술만 살아남은 거예요. 도태된 과학기술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뿐입니다.
-- 교수님의 관심 분야는 무엇입니까.
▲ 욕심이 많아서 다양하게 합니다. 최근에는 사회적 쟁점이 많아서 기술철학 연구를 더 많이 하는 편이에요. 원래 학부와 석사 때 물리학을 했습니다. 이후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죠. 박사학위 과정에서 경제학 모델과 자연과학 모델을 비교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과학 모형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정책이나 사회적 쟁점에 대한 윤리적인 고려에 대해 연구하게 됐어요. 특히 한국에는 과학철학자가 많지 않아서 사회적 쟁점이 있을 때 자문회의나 기술영향평가에 자주 참여하게 되는데 기술적인 이야기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아요. 그래서 지금 연구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 전공 영역을 물리학에서 철학으로 바꾼 동기가 있나요.
▲ 초등학교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고 물리학자가 되기로 했어요. 과학책이지만 고대 바빌론과 이집트에서 시작해 역사, 정치, 경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역사, 사회, 문화적인 내용까지 포함해서 자연과학적으로 우주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이야기하죠. 그래서 물리학과에 갔어요. 그런데 대학에 가니까 교수님이 물리학은 문제를 푸는 곳이고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질문은 철학과에서나 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물리학의 주도권이 유럽에 있을 때는 칼 세이건이 하는 것이 물리학이었는데, 1950년대 후반 이후 미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물리학은 문제를 푸는 학문이 된 거죠. 제가 재미있게 생각했던 많은 부분이 사라져 버렸어요. 물리학을 좋아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대학 때는 물리학 이외에 생물학, 화학 강의도 듣고, 인문학이나 사회학도 수강하고 했습니다. 물리학 대학원은 물리학을 직접 연구해보고 싶어 갔어요. 학부 때 공부를 하는 것과 연구를 해보는 것은 완전히 달랐죠. 연구한다는 것이 뭔지 감을 잡고 싶었어요. 물리학은 재미있지만 연구는 철학보다 지루했어요. 그래서 과학철학을 하게 됐죠. 지금 철학을 하고 있지만 물리학을 여전히 많이 좋아해요. 한 번도 바꿨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 얼마 전 인공지능 감정로봇 '소피아'가 방한했습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 소피아가 감정로봇이라고 하는데, 감정을 가진 로봇이라는 느낌이 들죠. 감정은 두뇌의 작용으로 나타나요, 그런데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연구는 걸음마 단계예요. 그래서 소피아를 감정로봇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 거짓말이에요. 로봇이 감정을 가지려면 우리가 만들어 넣어야 해요. 그런데 현재 감정을 어떻게 만들어 넣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먼 미래에 로봇이 감정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은 불가능할 거예요. 감정로봇은 인간의 감정 표현 사진을 많이 보여주고 학습시켜 상대의 감정이 어떨 것이라는 것을 확률적으로 추측하는 알고리즘을 집어넣은 거예요. 소피아는 조금 더해서 감정 표현을 아주 초보적으로 하죠.
인간의 얼굴에는 근육이 100개가 넘습니다. 얼굴 근육을 기계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해요. 소피아는 아주 초보적인 형태에서 흉내를 내는 거죠. 그래서 표정이 어색해요. 감정을 인지하고 조금 표현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소피아가 감정이 있다고 느낍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거죠.
그런데 이것이 엄청난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요.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페'를 보면 가정에서 인간 가족과 상호작용하는 게 나오는데 섬뜩하더라고요. 페페를 가족으로 생각하며 생활하다가 프로그램이 오류를 일으키거나 비인간적이라거나 냉정해졌다고 느낀다면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어떤 경우에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겠죠. 일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히키코모리가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소셜로봇과 단둘이 산다면 사회적 문제가 많이 발생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고 인간을 흉내 내는 로봇을 그냥 사회에 풀어놓으면 된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해요. 중요한 것은 로봇이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 가능한 시나리오와 상황을 생각하는 융·복합 연구가 필요하죠. 과학자는 사회복지학자, 인류학자, 철학자와 같이 공동으로 연구하며 로봇을 만들어야 해요.
-- 영화 '트랜센던스'나 '공각기동대'를 보면 인간의 의식에 대한 고민이 생깁니다.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예전에는 인간을 모델로 얼마나 잘 흉내 내는가가 인공지능의 목표였어요. 기계의 기능이 떨어져서 어떻게든 인간을 흉내 내려고 한 거죠. 최근에는 인간보다 기능이 우수한 다른 동물이나 곤충을 모델로 하거나 수학적으로 인공지능을 구현하고 있죠. 알파고는 인간처럼 바둑을 두지 않지만 인간 최고 기사를 이겼어요. 인간을 꼭 흉내 낼 필요는 없다는 거죠. 의식의 경우 사실 인간에게 없어도 되는데 왜 생겨났느냐에 대한 연구가 있어요. 날아오는 공을 잡을 때 뉴턴 역학을 머릿속에서 계산해 잡지는 않습니다.
고대 철학자들은 의식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라고 봤지만 요즘 신경과학은 필요 없을 것 같은 의식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연구하죠. 우리 두뇌는 상당히 자치적인데, 시각과 청각 중추가 따로 놀아요. 어떤 사람을 인지하는 데 시각과 청각이 서로 다르게 평가한다면 두뇌는 그 사람이 어떤지를 확률적으로 추론해요. 뇌의 각 영역에서 나오는 정보를 모아서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거죠. 바로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의식이 탄생했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기계는 꼭 의식을 가져야 할까요? 기계는 두 가지 이유로 의식을 갖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요. 첫 번째는 현재 기계가 의식을 갖게 만드는 것에 대한 이론((理論)이 없어요. 두 번째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절대다수가 그것을 만들려 하지 않아요. 법률 문서를 빨리 읽어서 판단하거나 정책을 평가하는 등 특정 목적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을 만들지 굳이 인간의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을 만들지는 않을 거예요. 연구비 투자도 받지 못할 거고요. 모든 경우를 뛰어넘는 경우가 바로 군사 목적이죠. 군사적인 목적으로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 필요하다면 만들지 몰라도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필요가 없고 투자를 받기도 힘들 거예요.
-- 앞으로 인체의 많은 영역을 각종 인공장기로 채울 가능성이 큽니다. 이럴 경우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가 될까요.
▲ 현재 인공장기와 관련해 과장된 것이 너무 많습니다. 바이오 인공장기가 언젠가 나오겠지만 그렇게 빨리 실현될 것 같지는 않아요. 언론에서처럼 장기를 쉽게 교체하고 기계나 바이오 장기를 쓰면서 평생 살아가는 것은 전혀 가능성이 없어요. 3D 프린터로 바이오 장기를 찍어내는 시기가 몇 년 내에 도래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첨단기술 분야에서 사람들이 기대를 많이 하는데 과장이 심해요. 그렇게 과장하는 것은 연구비 투자를 받기 위해서죠.
먼 미래에는 상당히 안정되게 인공장기를 사용하는 시대가 올 수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회문화적인 문제가 꽤 있죠. 심장, 폐 등 장기는 바꿀 수 있겠지만 인체를 젊게 만드는 방법은 없어요. 인간이 80~90세가 되면 노화되면서 생리학적으로 다양한 변화가 생기죠. 그런 상태에서 장기만 새것이 들어가면 불균형이 생길 거예요. 숨은 잘 쉬는데 혈관, 근육 등 다른 부분이 따라가지를 못해요. 젊은 사람처럼 활동하고 싶은데 몸은 따라가지 못하니까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어요. 또 장기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만 생리작용에 문제가 생겨 죽음에 이르게 될 텐데, 그런 죽음이 과연 바람직할 것이냐는 문제도 있겠죠. 인간의 정체성 문제는 법률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봐요. 현재 심장박동기를 달거나 의수, 의족을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달았다고 법적으로 사람이 아니라고 규정하지는 않죠. 결국 문제는 두뇌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훨씬 더 먼 미래의 이야기라서 그때 가서 고민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정말 그렇게 가까이 있습니까.
▲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우리 가까이 있지만 5년이나 10년 이내에 이뤄질 것으로는 보지는 않습니다. 1950년대 사람들이 2000년에 벌어질 일을 상상한 것을 보면 재미있어요. 그중에 실현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데 실현되지 않은 대표적인 것이 개인용 비행기예요. 당시 사람들은 50년 후면 소형 핵발전기를 장착한 비행기를 자가용처럼 타고 다닐 거리고 예상했어요. 당시 있던 비행기를 기술적으로 발전시키면 가능한 일이었죠. 하지만 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사회적 수요의 불확실성 등으로 실현되지 못했어요. 당시 사람들이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휴대전화예요. 영상전화는 생각했지만 휴대전화는 생각하지 못했죠.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휴대전화 같은 것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거예요. 이것을 4차 산업혁명에도 적용할 수 있죠. 지금 원시적인 형태의 인공장기가 있는데 바이오 장기로 쉽게 교체하고,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아무 곳에서나 이용할 수 있는 초연결 사회가 되고, 알파고가 훨씬 똑똑해져 초지능이 나올 수 있죠. 물론 개인용 비행기의 사례처럼 실현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 거예요.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지나치게 기술 위주로 논의하고 있어요. 기술이 더 발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거죠.
클라우스 슈바프가 쓴 '4차 산업혁명'을 보면 4차 산업혁명의 꿈과 같은 얘기를 50쪽에 걸쳐 쓰고 나머지 150쪽에는 전문가 설문조사를 통해 의견을 낸 것이 나와요. 그것을 보면 결과가 긍정적, 부정적인 것 이외에 상당한 분량이 불확실한 것에 할애돼 있어요. 특정 기술의 발전에 사회가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식으로 제도를 만들고, 어떻게 가능성을 살려내는가 등 4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죠. 사회, 문화, 정책, 법률적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 기술만 보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거죠.
대량실업 사태도 그래요.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대다수가 실업자가 될 거여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새로운 기술은 파괴적 혁신을 이루기 때문에 기존 일자리가 없어져도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주장이 있죠. 극단적인 비관론과 낙관론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주도적 견해는 두 가지 주장의 중간 어디쯤 있어요. 인공지능을 연구해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으니까 일자리 감소 효과는 있죠. 하지만 일자리 대체는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 만큼 이득이 나올 때 가능해요.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쉬운 분야가 있고 그렇지 못한 분야가 있다는 거죠. 비관적 견해가 실현될 수도 있지만 오도는 하지 말아야 해요. 대량 실업사태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부적응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 저는 과학기술을 문화로 봅니다. 문화가 사람이 만든 무늬라는 뜻이잖아요. 자원을 사용해서 하는 활동이죠. 원시시대에는 잉여생산물이 없으니까 문화라는 것이 거의 없었어요. 예술처럼 과학기술도 일종의 문화죠. 결국 잉여자원을 사용해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니까 하는 거예요.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다, 적응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면 충분히 조절할 수 있어요. 아주 간단하게 연구비를 끊으면 해결할 수 있죠. 하지만 외국에서 일어나는 변화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이 바람직하게 발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자원을 어디에 투입해야 하는가입니다.
-- 교수님은 앞으로 30년 후 어떤 미래를 맞이하고 싶으십니까. 또 과학적 발전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이 있으십니까.
▲ 30년 후면 몸이 여기저기 안 좋아지겠죠. 그때가 되면 행복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또 기술을 개발할 때 과장하지 말고 그것이 갖는 다면적 측면을 고민하면서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과학기술을 거대한 문화의 한 측면으로 생각하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과학철학자로서 더 발전된 미래사회를 보고 싶은 욕심은 있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지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과학철학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과학철학자가 많을 필요는 없지만 과학철학적인 시각이나 과정, 중요성을 생각하고 개발자, 사용자, 정책이나 법률 입안자가 모두 과학철학을 널리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욕심입니다.
--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십니다.
▲ 밀실에서 결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으로부터 의견을 수집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거죠. 정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듣고 나면 개발자나 연구자, 정책입안자가 결코 생각하지 못한 것이 나와요. 그런데 정치가들은 쉽게 가려고 해요. 국민은 잘 모르니까 전문가 몇 명 불러서 결정해버리거나 아니면 사회적 합의를 거쳤다며 쉽게 결정해버리는데, 정말 비겁한 거죠.
-- 우리 시대에 큰 영향력을 줄 과학기술은 무엇일까요.
▲ 앞으로 20년 정도는 정보통신기술(IT)일 것 같아요. 단기적으로 파급효과가 큰 기술은 인공지능보다는 초연결 사회죠. 곳곳에 센서가 있고 휴대전화와 연동되어 데이터를 처리하고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결과를 활용해 행동하는 것을 말하죠. 우리 삶이 상당히 많이 바뀔 거예요. 장기적으로 보면 바이오 기술입니다. 인공장기를 사용하고 인간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거죠.
-- 위대한 과학자와 기술자로 윌리엄 허셜과 굴리엘모 마르코니를 꼽으셨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 윌리엄 허셜은 망원경을 만들어 천왕성을 발견하고 은하계를 관찰한 과학자예요. 이 사람은 인문학적 성찰을 했어요.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의 범위와 시간을 확장했죠. 또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신의 관계, 삶의 가치 등 인문학적 질문을 던졌어요. 더 중요한 것은 당시 문필가들과 교류를 했다는 거예요. 요즘 말로 하면 진정으로 융·복합적인 학제적 연구를 한 거죠. 무선 통신 시대를 연 마르코니는 비전을 보여준 기술자였어요. 다른 사람들이 무선전신을 유선전신의 틈새시장으로 봤을 때 그는 경쟁시장으로 생각했어요. 유선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또 필요한 기술을 모아서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습니다.
-- 향후 계획을 소개해 주세요.
▲ 그동안 책을 여러 권 냈는데 혼자 쓴 저서가 없어요. 올해 독자적으로 쓴 책을 낼 겁니다. 한양대에서 오랫동안 강의했던 '상상력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상상력을 키워드로 과학기술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는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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