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구도에 부담 느꼈던 이상화, 그동안 고다이라를 '그 선수'라 칭해
루틴까지 포기했던 이상화…경기 끝나자 고다이라와 뜨거운 포옹
(강릉=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고다이라와 서로를 격려했어요. 우리 모두 네가 자랑스럽다고…그랬어요."
빙속 여제 이상화(스포츠토토)는 18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를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코멘트였지만, 그의 말 한 문장 속엔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었다.
이상화는 이날 공식 석상에서 고다이라 나오(일본)의 이름을 근래 처음으로 입에 올렸다.
이상화는 고다이라가 여자 500m에서 최강자로 떠오른 뒤 라이벌 구도에 매우 민감해 했다.
고다이라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고, 어쩔 수 없이 코멘트할 때는 고다이라를 '그 선수'라 불렀다.
무시무시한 실력으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여자 500m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은 고다이라의 존재는 이상화에게 부담스러웠다.
더군다나 두 선수의 경쟁 구도가 '한일전'양상으로 흐르면서 이상화는 무거운 부담감을 느꼈다.
이상화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새로운 소식을 전할 때마다 해시태그(#)로 "난 나야"라며 평창올림픽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되뇌었다.
단판 승부로 펼쳐진 평창올림픽 여자 500m 경기에서도 그랬다.
그는 고다이라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자신의 루틴까지 포기했다.
이상화는 평소 경기 준비를 스타트 라인에서 하지만, 앞 조에서 뛴 고다이라의 기록을 보지 않으려고 마지막 곡선주로 인근에서 몸을 풀었다.
거추장스러운 헤드셋을 끼고 전광판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며 움직였다.
'그 선수'의 존재는 이상화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러나 이상화는 경기가 끝나자 '그 선수'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격려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상화는 입술을 움직여 '고다이라'라는 이름을 내뱉었다.
그간 느꼈던 부담을 모두 씻어버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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