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수사방해' 재판서 증언…"검찰 압수수색 미리 얘기해줘"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당시 국정원에 파견됐던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지시로 원세훈 전 원장의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 일부를 삭제했다는 관계자 증언이 나왔다.
이 녹취록은 원 전 원장의 '국정원 댓글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유죄의 핵심 증거로 쓰인 자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19일 열린 장 전 지검장 등의 속행공판에는 당시 국정원 감찰실 보안처장 A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장 전 지검장은 당시 검찰에서 국정원으로 파견돼 감찰실장으로 재직했다.
장 전 지검장은 국정원이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허위 서류 등을 비치한 가짜 심리전단 사무실을 만들고, 심리전단 요원들이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에서 실체와 다른 진술을 하도록 지침을 제시하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다.
A씨는 장 전 실장의 지시로 원 전 원장이 주재한 부서장 회의 녹취록의 일부분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감찰실에서 일차적으로 조직과 직원 이름 등을 지우는 '비닉(비공개·은닉)' 처리를 하고 감찰실장에게 보고하면, 실장이 삭제할 부분을 다시 표시해주는 방식으로 수정작업이 이뤄졌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A씨는 "'4대강' 등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부분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지우라고 해 지웠다"고 말했다.
당시 국정원은 검찰이 원 전 원장의 녹취록을 요구하자 보안을 이유로 주요 내용을 지운 녹취록을 넘긴 바 있다.
작년 검찰은 삭제된 내용이 상당 부분 복구된 녹취록을 다시 받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고, 이는 원 전 원장의 유죄를 증명하는 중요 증거가 됐다.
A씨는 장 전 지검장이 사전에 검찰 압수수색이 예정됐다는 사실을 알려줬다고도 증언했다.
그는 "장 전 실장으로부터 다음 주 초쯤에 압수수색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전반적으로 검찰과 압수수색 시기에 대한 사전 조율이 있었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장 전 실장 지시를 받은 뒤 심리전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서 조직명이나 이름 등을 비공개 처리하는 등 '보안성 검토'를 했다"고 말했다.
A씨는 검찰 압수수색 전날 저녁 서천호 당시 국정원 2차장 등이 '위장 사무실'을 둘러볼 때 동행한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 현장에는 김규석 당시 3차장과 변창훈 법률보좌관, 이제영 파견검사 등이 함께 있었다는 증언도 했다.
이어 "사무실이 한두 개 정도 만들어져 있었다"면서 "캐비닛 안에 서류가 많이 있지는 않았다. 거의 비어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장 전 지검장 측은 앞선 재판에서 "말이 압수수색이지 사실은 국정원이 제출하는 자료만 검찰이 가져가는 방식으로 이미 다 협의가 이뤄진 상태였다"며 수사방해 혐의를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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