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에서 '인간 방패'로까지 책무 변화에 불면의 밤
사건 학교 교사들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도…한 교사 "아이들한테 돌아가고 싶다가 내 결론"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나는 총탄 앞에 몸을 던질 준비가 돼 있는가?'
학교에서 빈발하는 총기 난사 사건에 미국 교사들이 교육자, 상담자, 경호원, 보호자를 넘어 '인간 방패'로까지 역할이 확대되는 현실과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9일(현지시간) 전했다.
지난 14일 플로리다의 한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때 미식 축구팀 코치가 날아드는 총탄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려다 치명상을 입고 숨진 것이 미국 전역의 교사들에게 자신들의 책무 범위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참사 사흘 뒤인 17일 플로리다 브로워드 카운티의 교원 노조 강당을 가득 채운 집회에서 초등학교 교사 로버트 파리시는 "지난밤 아내에게 나도 아이들 대신 내 몸으로 총탄을 받을 거야"라고 말했다며 "사건 이후 늘 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학생들에게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량 학살을 가르친다고 소개한 고교 교사 브루스 클라스너는 "한 교사가 자신의 학생들과 함께 있겠다고 고집하며 아이들과 함께 가스 처형실로 들어갔다고 설명한 후 교실 밖에서 함께 앉아 있던 학생들이 '선생님도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릴 거죠?'라고 물어 `물론'이라며 '물을 필요도 없는 건데'라고 답했었다"고 소개했다.
미국의 교사들은 지난 며칠간 연방 의회에 공격용 무기를 금지할 것을 청원하고 주 의회엔 교사들의 총기 휴대를 허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경찰관이나 소방관들이 겪는 생사의 위험과는 거리가 멀었던 교사직이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된 고통스러운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번민하면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초등학교 6학년생을 가르치는 캐서린 콜렛은 지난 며칠 동안 오만가지 상황을 그려보고 있다며 "내가 그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면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캐비넷을 비우고 아이들을 거기에 숨길 수 있을까? 교실 문이 열리지 않게 막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럴 시간이 있을까? 아이들에게 도와달라고 할까?"
브로워드 카운티 교원 모임에선 다음에 같은 일이 일어날 경우 어떻게 막을까 고민하면서 야구 방망이나 골프채를 교실에 비치해두거나 방탄조끼를 구비하자는 등의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잠재적 살인자들을 미리 파악해 학교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들도 논의했다.
강당 밖에서 뉴욕타임스 기자를 만난 초등학교 교사 파리시는 복도에 남아 있던 한 학생이 뒤늦게 교실 문을 두드릴 때 표적을 찾아 교내를 돌아다니던 총기 난사범이 바로 뒤에 붙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문을 열어줘야 할까? 아니면 교실에 있는 더 많은 아이들을 구해야 할까? 나로선 결정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교 특수학급 담임인 안드레아 수아레스는 자신의 학생들이 조용히 있도록 통제가 안되기 때문에 숨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수아레스가 생각하고 있는 계획은 아이들을 벽장에 과자와 함께 숨기고 자신은 가위를 들고 벽장 문 앞을 지키는 것이다.
수아레스는 "아이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총성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아서 불면증을 겪고 있다"며 자신의 네 아이들은 학교를 그만 두라고 조르고 있다고 말했다.
총기 난사 플로리다 고교에서 당시 현장과 가까운 교실에서 수학 수업을 하고 있었던 짐 가드는 동료 교사들 가운데 학교로 돌아가는 문제로 고심하는 사람이 많다며 "나는 돌아가려 한다. 아이들한테 가려 한다. 내 교실에도 가려 한다. 아이들을 보고 싶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이게 내 결론이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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