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만류 뚫고 '아리랑' 고집…'꿈의 무대' 성공적으로 마무리
(강릉=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대한민국의 민유라-알렉산더 겜린!"
장내 아나운서의 힘찬 소개에 20일 강릉아이스아레나를 찾은 관중은 큰 함성으로 환호했다.
한복 저고리를 변형한 연분홍색 상의와 한복 치마를 연상시키는 진분홍색 하의를 단아하게 입은 민유라와 역시 한복을 변형한 하늘색 상의와 짙은 푸른색 바지를 입은 겜린은 등장 자체만으로도 관중석을 술렁이게 했다.
이날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프리 댄스에서 민유라-겜린이 은반 가운데에서 준비 동작을 취하자 관중은 숨죽이며 기다렸다.
배경음악인 소향의 '홀로 아리랑' 선율이 나오고 민유라-겜린은 한국 무용을 연상시키는 안무를 시작했다.
이들의 눈빛과 표정뿐만 아니라 손끝, 발끝에서도 애절함이 묻어나왔다.
클라이맥스로 치달아가는 '아리랑'에 맞춰 선수들이 어려운 리프트와 스핀 동작을 할 때마다 관중은 아낌없는 박수로 화답했다.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원곡 '홀로 아리랑'의 가사 속 '독도' 구절이 정치적 논란을 우려해 3초간 삭제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눈을 뗄 수 없는 이들의 연기 속에 가사의 공백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민유라-겜린은 관중과 함께 호흡하며 그토록 바라던 '아리랑' 연기를 멋지게 마쳤다.
두 선수는 뜨거운 포옹을 나눴고, 관중은 긴 박수로 감동 연기에 화답했다.
이날 관중석에선 다른 날보다 태극기를 흔드는 한국 관중이 많이 눈에 띄었고, 한복을 입고 온 관객도 있었다.
이날 프리댄스를 마친 민유라-겜린은 한국 아이스댄스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기록한 최고 성적인 18위를 차지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많은 이가 보는 올림픽 무대에서 한복 의상과 '아리랑' 음악을 들고 한국적이고도 아름다운 연기를 펼쳤다는 점에서 성적 이상의 감동을 주고 있다.
민유라와 겜린은 올림픽 시즌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낮은 인지도를 우려한 주위의 만류에도 '아리랑'을 고집했고, 결국 '아리랑' 연기로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올림픽에서도 쇼트 댄스 예선을 통과해 '아리랑' 프리 댄스를 선보이는 것이 목표라고 입을 모았던 민유라와 겜린은 이날 꿈의 무대를 마친 후 "우리가 고집한 '아리랑'을 올림픽까지 와서 연기했다는 것이 만족스럽다"고 환히 웃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재미교포 민유라는 "팬들의 응원이 너무 좋아서 정말 쉽고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다"며 "마지막에 음악이 클라이맥스로 향할 때 나도 큰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국적을 얻은 미국 태생의 겜린은 한복을 입고 연기하는 것에 대해 "태극기를 달고 스케이트를 타는 기분"이라며 "이걸 입음으로써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관객과 공유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미소 지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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