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임창정 "웃기고 싶을뿐…국정농단 다룬 영화 아녜요"

입력 2018-02-20 15:55  

'게이트' 임창정 "웃기고 싶을뿐…국정농단 다룬 영화 아녜요"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28일 개봉하는 '게이트'는 본격적인 시국 풍자극을 표방하는 영화다.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던 김규철 검사가 결정적 증거를 확보한 직후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지난 정권에서 권력 핵심부를 겨냥했다가 갖은 불이익을 떠안은 검찰 내 일부 인사들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좌천당하거나 옷을 벗은 정도가 아니다. 규철은 바보가 됐다. 기억을 잃어 자신이 한때 검사였는지도 모른다. 혀짧은 목소리로 옆집 사는 처자 소은에게 구애하다가 결국 그녀와 함께 금고털이에 가담하게 된다.
바보인 규철이 집단 도둑질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고작 망을 보거나 어수선한 몸짓으로 감시자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일 정도. 노란색 이소룡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바보를 연기한 임창정을 20일 만났다.



"영화에서 최순실이라고 한 적 없잖아요? 강남의 어느 아줌마예요. 그 아줌마가 비리를 저질렀다고 한 것도 아니고요. 국정농단 사건을 다룬 건 아녜요."
'게이트'는 촬영을 시작하던 지난해 봄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 역사적 평가가 채 시작되지도 않은 대형 사건을 실시간에 가깝게, 그것도 코미디 영화에 담는 게 무리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영화 속 캐릭터에는 실제로 국정농단 사건에 관계된 인물들이 반영됐다. 배우 정경순이 머리에 선글라스를 얹고 의상실에서 '갑질'을 한다. 강남 아줌마는 비밀금고에 거액의 현금을 숨겨놓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상 강남 아줌마가 등장할 필요는 없다.



김규철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도둑질에서 그의 역할은 전직 검사 신분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검사가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이었어도 이야기는 같다. 결과적으로 국정농단 사건에 얽힌 인물들을 금고털이 이야기에 얹었을 뿐이다. 국정농단의 구체적 과정은 상징적으로도 그려지지 않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풍자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냥 웃기고 싶었어요.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요. 가벼운 느낌의 '도둑들'을 하려고 했는데 그때 세상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보여드리는 거예요. 커다란 사건사고들을 겪으면서 작년과 올해를 보냈고 내년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완성되는 사이 검찰과 법원에선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법적 처벌이 상당 부분 이뤄졌다. 이에 반해 영화는 관객에게 현실과 결부된 카타르시스를 주지도 않는다. 임창정은 "단죄는 촛불이 했다"며 "영화가 왜 해결을 안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국이 해결했고 영화는 그걸 보여줄 뿐"이라고 말했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훨씬 노골적으로 국정농단 사건을 반영한 장면들이 많았다고 한다. 신동엽 감독에게 "제정신이냐, 미친 것 아니냐"고 했다. "욕먹으니까요. 지난 한해 동안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받은 사람들한테…. 말려주고 싶었어요." 완성본 '게이트'는 일종의 절충안으로 나왔다.
임창정이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이유는 따로 있다. 주연에 음악·제작까지 맡으며 공을 들였다. 처음에는 '치외법권'(2015)을 함께 했다가 관객수 34만명으로 흥행에 쓴맛을 본 신동엽 감독에 대한 의리로 시작했다. 신 감독은 개명까지 해가며 절치부심하던 차였다.
"처음에는 우정출연 정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돈이 좀 필요한 것 같아서 좀 넣다가, 공동으로 영화사를 하나 만들어서 같이 하게 됐어요. 첫 작품이 '게이트'예요."



'치외법권'과 지난해 '로마의 휴일'(13만명) 등 근작들의 흥행참패에 부담을 느낄 만도 하다. 그러나 임창정은 "최선을 다해 이끌어낸 결과라면 후회하지 않는다"며 "시나리오보다 영화가 잘 나온 것 같아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단기간을 놓고 보면 가수로서, 연기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있다가 내려온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100년을 살 거예요. 어느 땐가 좋은 일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요. 칠순 돼서 남우주연상 받고 '40대에 영화마다 망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생각이 나네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래요."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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