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시 처음으로 노숙자 전수조사…매일 3천명 거처 없이 거리서 밤 지새워
마크롱, 취임 직후 완전해결 공언했다가 최근 실패 자인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파리는 낭만과 예술의 도시라는 화려한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노숙자들의 고된 삶을 자주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노숙자들이 넘쳐나는 현실에 무지한 듯한 정부 각료와 여당 정치인들의 '망언'성 발언이 이어지며 논란에 휩싸이자 파리시가 나서서 사상 처음으로 노숙자 전수조사를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정부의 노숙자 문제 해결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지난 15일 밤(현지시간) 공무원 300명과 자원봉사자 1천700명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노숙자 찾기에 나섰다.
'연대의 밤'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조사에서 공무원과 봉사자들은 밤과 새벽 사이 거리를 돌며 총 2천952명의 노숙자가 거처 없이 거리와 지하철역 구석 등에서 잠을 청한 것을 확인했다.
시와 정부가 제공하는 노숙인 쉼터에서 하루를 난 사람까지 합치면 노숙자는 5천여 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 한참 못 미치는 과소평가된 수치라는 것이 파리시의 입장이다.
공공복지주택의 층계참이나 주차장 입구 등 노숙자들이 거처로 잘 삼는 곳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오직 거리나 지하철역에서 자는 사람들만 헤아렸기 때문이다.
프랑스, 특히 수도 파리의 노숙자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도시 곳곳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지하철역 구석은 물론 도심의 화려한 야경 아래에서는 어김없이 노숙자들이 풍경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구걸로 연명하며 대낮에도 술에 만취해있는 경우가 많다. 순찰하는 경찰이 노숙자들을 그냥 지나치는 모습도 흔히 목격된다.
낮에는 관광지로 유명한 파리 생마르탱 운하 주변은 밤에는 노숙자들의 천국으로 변해버린다.
프랑스의 노숙자 문제는 대통령도 처음에 우습게 봤다가 정책 목표를 너무 거창하게 잡았다고 시인할 정도로 심각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작년 여름 '올해 말까지 프랑스 전역에서 거리의 노숙자들이 보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최근에는 너무 큰 목표였다며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노숙자 문제를 고민해온 사회당 소속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최근 이 문제로 여야 정치권 간에 논쟁이 불붙자 파리시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기로 했다. 그 방법이 바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한 전수조사였다.
발단은 정부 각료와 여당 의원들의 현실에 무지한 듯한 발언이었다.
지난달 프랑스 영토통합부 산하의 도시개발 문제 담당 국가비서(장관급)인 쥘리앙 드노르망디는 '파리에 노숙자는 하루 50명 밖에 안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알려져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노숙인 쉼터에 도움을 요청하고서도 자리 부족으로 거부당한 사람들의 일평균 집계를 뜻한 것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비난은 수그러지지 않았다. 정부가 사회복지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난 노숙자 문제에 의도적으로 눈을 감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며칠 뒤 여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 소속 실뱅 마이야르 파리시의원은 나아가 "노숙자들이 겨울에도 바깥에서 자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해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한 노숙자는 정치인들의 이런 '망언'이 이어지자 일간지를 통해 마크롱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보내 노숙인 쉼터의 열악한 여건을 고발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튀니지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피자를 만들다가 실직한 뒤 파리로 넘어왔다는 이 49세 남성은 리베라시옹 기고문에서 "115(노숙인 도움요청 번호)에 한번 전화해보시라. 매일 2∼3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통화가 되는데 그것도 운이 좋아야 몸을 눕힐 자리 하나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노숙자 문제 해결에 할 만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일간 르피가로에 따르면 작년에 정부가 노숙인 쉼터 마련과 숙식제공에 들인 예산은 20억 유로(2조6천억원)에 이른다. 프랑스는 특히 이번 겨울을 나게 하려고 노숙인 긴급쉼터를 1천여 곳 이상 증설했다.
그러나 올해 1월 1일부터 최근까지 수도권 일드프랑스 지방에서만 노숙자 20명이 거리에서 숨진 것으로 집계되는 등 노숙자 문제는 여전히 프랑스의 어두운 단면으로 남아 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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