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저술가 이종호 신간 '조선시대 과학의 순교자'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국립과천과학관에 있는 '과학기술인 명예의전당'에는 2018년 현재 33명의 우리 과학자들이 올라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정약전도 그중 한 사람이다. 다방면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고 인지도도 더 높은 동생 정약용을 제치고 그가 헌정된 것은 유배라는 인생의 막다른 상황에서 '자산어보'라는 명저를 남겼기 때문이다.
1801년 신유사옥과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정약전·정약종·정약용 형제는 큰 화를 입었다. 정약종은 순교했고 정약전은 흑산도(현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 정약용은 강진으로 각각 유배됐다. 흑산도는 유배 후 돌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악명 높은 유배지였다. 그곳에서 16년을 보낸 뒤 생을 마친 정약전이 남긴 책 중의 하나가 '자산어보'다.
과학저술가 이종호는 정약전을 과학자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정약전은 '자산어보' 서문에서 "자산(흑산) 바닷속에는 어족이 극히 많으나 이름이 알려진 것은 적어 박물자가 마땅히 살펴야 할 일"이라고 밝히면서 문관인 자신을 '박물자'라고 칭했다. "현대적 관점에서 정약전은 '과학'이라는 개념을 익히 알고 어보를 저술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약전은 어류에 밝은 고장 사람과 함께 숙식까지 하면서 물고기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 실제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기록하는 과학적 자세를 취했다. 영남산과 호남산 청어의 등뼈 수 차이까지 밝힌 점은 놀랍다. "후학들이 '자산어보'를 잘 활용한다면 병을 치유하거나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힌 데서는 위민 정신이 드러난다.
정약전은 이종호의 신간 '과학의 순교자들'(사과나무 펴냄) 주인공 중 하나다. 저자는 조선시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과학자로 자리매김했던 이들을 불러낸다. 이들은 모두 정치적 사건으로 유배형을 받았던 인물이다. 유배지가 학문적 성취의 산실이 됐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정약용과 쌍벽을 이룬 지식인 서유구는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조선의 브리태니커'로 불리는 '임원경제지'를 저술했다. 관직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평생 생원으로 살았던 최한기는 1천여 권의 책을 남겼다. 중국인보다 더 정확하게 중국 풍경을 저술했다는 평가를 받는 '표해록'의 저자 최부는 강직한 성품 탓에 갑자사화 때 참형을 당했다.
저자는 이들의 생애와 업적을 서술하면서 '과학의 순교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유배형에 처해졌을 때 신세를 한탄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자신의 지식을 닦고 제고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 선각자의 탁월한 업적은 유배가 아니었다면 결실을 맺을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유배 받은 이유가 어떻든 그들의 업적이 과학에 관련되는 한 모두 '과학의 순교자'들이다."
366쪽. 1만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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