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중위 20주기 추모미사…모친 "20년만에 마음 풀려" 통곡

입력 2018-02-22 12:07  

김훈 중위 20주기 추모미사…모친 "20년만에 마음 풀려" 통곡
염수정 추기경 집전…부친 "국방부, 은폐·조작 대국민 사죄해야"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1998년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소초(GP)에서 총상을 입고 의문사한 고(故) 김훈(당시 25세) 중위의 20주기 추모 미사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 미사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지 19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고 국가유공자가 돼 국립묘지에 영면한 김 전 중위의 넋을 달래는 자리였다.
미사가 예정된 오전 10시를 한 시간가량 앞둔 시간부터 시민 수십 명이 명동성당에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미사에는 김 중위처럼 군 복무 도중에 목숨을 잃은 자식을 둔 부모들도 상당수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천주교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해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추기경이 시국사건에 대해 추모 미사를 집전하는 것은 1987년 5월 18일 이후 31년 만에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박종철 열사에 대해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이 자리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박종철 열사를 고문한 추가 공범을 폭로하기도 했다.
성당 제대 앞에는 가로·세로 20㎝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크기의 김훈 중위 영정과 함께 꽃바구니가 놓였다.
꽃바구니에 달린 리본에는 '김훈 중위 20주년 추모 미사, 요한 비안네(김 중위의 세례명)를 사랑하는 가족 일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꽃바구니 오른쪽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커다란 화환이 자리했다.
김 중위 부친 김 척(76·육사 21기·예비역 중장) 씨와 모친 신선범 씨 등 유가족들은 맨 앞자리에 앉았다.
미사보를 쓴 신 씨 옆에는 김 중위 조카들이 검은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김 중위 부모는 담담하면서도 슬픔이 서린 표정이었던 반면 아이들은 멋모르고 해맑았다.



미사는 염 추기경의 추모사를 시작으로 차분히 진행했다.
염 추기경은 "김 중위 사건은 한국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이다. 유족의 의견이 무시되면서 유족은 또 다른 상처를 입었다"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목숨을 잃은 당사자와 가족에 대한 국가의 태도에 많은 이들이 실망했다"고 짚었다.
그는 "징병제 국가에서 군에 온 젊은이들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며 "김 중위 유족뿐 아니라 군에서 아들을 잃은 모든 부모님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 중위의 육사 52기 동기인 박기범 씨는 "훈이는 힘든 생도 생활을 할 때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면서 "훈이를 시작으로 군이 의문사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참담한 죽음이 남긴 역설적인 선물"이라고 했다.
김 중위의 부친 김 척 씨는 미리 준비해온 추모사를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며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도움을 줬던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그러나 "국방부는 19년간 사건을 은폐·조작한 데 대해 대국민 사죄하고, 범인을 잡아 법적 처벌하라"면서 "그것이 법치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내내 눈물을 보이지 않던 김 중위 모친은 미사가 끝나고 참석자들을 향해 "아들을 위해 와주셔서 감사하다.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 됐다. 오늘에야 마음이 조금 풀린 것 같다"고 크게 소리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hy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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