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환 목사, 장례식에서 조사 낭독…"한국 개신교 급성장의 원동력"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제가 만난 성직자 중 가장 겸손한 분이셨습니다. 한국을 저 못지않게 사랑하셨고, 한국 기독교가 급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되신 분이죠."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는 지난 21일(현지시간) 타계한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45년간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1973년 그레이엄 목사가 서울에서 복음 집회를 했을 때 김 목사가 통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은 이후 김 목사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만남을 이어오면서 우정을 쌓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직전 한미 간 가교 역할을 했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와 문재인 대통령의 만남을 주선한 것도 김 목사다.
그레이엄 목사로부터 6년 전부터 자신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낭독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김 목사는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23일 출국한다.
22일 마포구 극동방송 사옥에서 만난 김 목사는 그레이엄 목사를 한마디로 요약해 달라는 질문에 "가장 겸손한 성직자"라고 말했다.
"1973년 여의도 집회 당시 준비했던 설교 내용에 대해 제가 한국에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하니 설교를 바꾸셨습니다. 설교 전 대기실에 그레이엄 목사를 보려는 목사, 신학교 교수 등 100여 명이 들락날락했는데 전혀 낯을 찡그리지 않고 사람들을 상대하고 사인해 주셨죠. 거물인데도 남을 배려하고 소통하면서 자기 생각을 바꿀 줄 아는 참 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여의도 광장 집회에는 약 110만 명의 군중이 모였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세계 각지를 다니며 전도대회를 해봤지만, 일생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열성적으로 경청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3년 전 그레이엄 목사 자택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에도 '한국에서 다시 전도대회를 열자'고 하셨다"며 "한국에서의 전도대회를 일생에 가장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에도 서울과 부산에서 복음 집회를 진행했고, 1984년에도 방한해 집회를 열었다. 1992년에는 김일성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대학에서 강연했다.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 역시 일본 강점기 선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갔다가 평양에 있던 외국인 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어 한국을 각별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김 목사는 지금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를 듣고 영향을 받아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는 한국 목사들을 많이 만난다며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한국 교회가 급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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