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감독 "가끔은 하늘보고, 들꽃에 눈길주는 여유 가지길"

입력 2018-02-23 07:00   수정 2018-02-23 11:38

임순례 감독 "가끔은 하늘보고, 들꽃에 눈길주는 여유 가지길"
4년만의 신작 영화 '리틀 포레스트' 28일 개봉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임순례(58) 감독은 2005년 서울을 떠나 양평에 전원주택을 마련했다. 매일 아침 강아지와 40분가량 집 근처를 돌며 산책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봄이 오면 텃밭에 상추와 고추, 오이, 토마토 등을 심어 재배한다. 그리고는 상추쌈과 된장찌개 등으로 소박한 식탁을 차린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의 동명 만화가 원작이긴 하지만, 임 감독의 삶이 어느 정도 반영된 영화다. "제 고향이 인천이에요. 50년 전에는 완전 변두리 시골이었죠. 나이 들어서는 양평에 살고 있고…시골에 대한 향수가 있나 봐요."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임 감독은 신작 개봉 전인데도 긴장한 기색 없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여유가 넘쳤다.
"너무 여유 없이 사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삶의 여백을 찾기를 바랐어요.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돌 틈에 낀 야생화에도 눈길을 주고, 냉장고를 열어서 나와 가족을 위해 정성스럽게 한 끼도 만들고…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시간 30분만 줄여도 할 수 있는 일이죠."



'리틀 포레스트'는 시험과 취업, 연예 등 모든 것이 제 뜻대로 안 되던 혜원(김태리 분)이 고향으로 돌아와 4계절을 보내는 이야기를 그린다.
텃밭과 산과 들에서 나는 작물들로 정성스럽게 매 끼니를 만들어 먹고, 소꿉친구들과 웃고 떠들면서 조금씩 삶의 위안과 여유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원작은 일본영화로도 만들어져 2015년 국내 개봉된 바 있다. 일본영화가 '겨울과 봄' '여름과 가을' 2편으로 제작됐다면, 임 감독의 신작은 4계절을 한편에 담았다.
"영화의 기본 설정과 주변에서 나는 식재료로 자급자족해서 먹는 이야기는 원작과 같아요. 다만,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게 우리 전통 음식으로 메뉴를 구성하고, 사람과의 관계 설정 등에 변화를 줬죠. 원작에서는 고양이가 등장하지만, 우리 영화는 개가 나오는 것도 차이점이고요."
영화 속에는 시루떡, 배춧잎으로 만든 부침개, 밤 조림 등 다양한 음식이 등장해 관객들의 입맛을 돋운다. 임 감독은 "아카시아꽃 튀김이나 매운 떡볶이 등은 직접 낸 아이디어"라며 웃었다.
임 감독은 그동안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같은 아웃사이더 영화와 아줌마 선수들의 휴먼 스토리를 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사회고발 내용을 담은 '제보자'(2014)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사실 제가 줏대가 별로 없어요. 연출 제안이 들어오는 것 중 저와 맞는 것을 고르다 보니, 제가 스포츠영화를 찍었다가 사회고발 영화를 찍었다가,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런데도 관통하는 공통점을 찾는다면 사회에서 소외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임 감독은 본연의 직업 이외에 여러 직함을 갖고 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이자, 인천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다음 달 1일 출범하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공동대표도 맡았다. 늘 바쁘게 사는 그에게 '인생의 쉼표'는 언제였는지 물었다.
"아마 가장 큰 쉼표는 고3 때인 것 같아요. 강압적이고 모든 것이 입시 위주로 돌아가는 교육제도에 항거해보고 싶어서 자퇴했죠. 그리고 2년간 쉬면서 책도 읽고 영화도 봤어요. 그 당시 고교 자퇴생은 사회에서 완전한 아웃사이더였죠. 그런 시기를 겪으면서 다른 아웃사이더를 이해하는데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요즘은 영화를 끝내고 나서 한 달씩 해외를 돌며 여행하는 게 저의 휴식인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혜원처럼 방황하고 고민하는 청춘들에 임 감독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때와 비교하면 살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사회가 너무 빠르게 변화가 있죠. 그렇다고 일순간에 그런 흐름을 바꿀 수도 없고요. 이런 구조 속에서 본인이 행복하게 살 방법을 최대한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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