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평창서 희망 확인한 한국 피겨…고민은 계속

입력 2018-02-23 15:06  

[올림픽] 평창서 희망 확인한 한국 피겨…고민은 계속
최다빈, 김연아 제외 역대 최고 7위 우뚝…김하늘·차준환도 맹활약
페어·아이스댄스도 싹 자랐으나 여전히 적은 유망주·세계와 격차는 숙제



(강릉=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피겨여왕' 김연아의 은퇴 이후를 고민하던 한국 피겨가 희망의 싹을 확인하며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마쳤다.
하지만 여전히 좁은 선수 저변과, 간신히 돋아난 새싹이 무럭무럭 크도록 지원할 수 있느냐는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3일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끝으로 '메달 이벤트'가 모두 마무리된 평창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한국은 비록 메달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지만 하루하루 역사의 새 페이지를 써나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이날 최종순위 7위에 오른 최다빈(고려대 입학예정)의 선전이다.
최다빈의 순위는 '피겨여왕' 김연아(은퇴)를 제외하면 한국 선수가 역대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기록한 가장 좋은 성적이다.
평창올림픽 이전까지 김연아 외의 한국 선수가 기록한 올림픽 최고 성적은 2010년 밴쿠버 대회의 곽민정이 오른 16위였다.
피겨 팀이벤트와 개인전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달아 개인 최고 점수를 작성한 최다빈은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최고점 행진을 벌이며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순위에 올랐다.
함께 출전한 한국 선수단의 '막내' 김하늘(수리고 입학예정)도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서 프리스케이팅과 총점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며 당당히 13위에 올랐다.



여자 싱글만이 아니라, 평창올림픽에서 벌어진 경기 일정 하나하나마다 한국 피겨는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대회의 시작을 알린 팀이벤트에 출전했다는 것만으로도 페어스케이팅 선수를 발굴하고, 끊겼던 아이스댄스의 명맥을 이어 '불모지'이던 한국 피겨에 새싹이 하나씩 돋아나고 있음을 알린 일이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의 양태화-이천군 이후 16년 만에 한국 아이스댄스의 올림픽 출전을 이룬 민유라-겜린은 쇼트댄스를 통과하고 역대 최고 성적인 18위에 올랐다.
특히 민유라-겜린은 올림픽 무대에서 최초로 한복 의상과 '아리랑' 연기를 펼치며 큰 감동을 전해 평창올림픽의 스타 중 하나로 주목받았다.
남자 싱글의 간판 차준환(휘문고)도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연달아 개인 최고점을 받으며 한국 남자 싱글의 역대 최고 성적인 15위를 기록했다.
비록 부진한 경기로 눈물을 흘렸지만, 김규은-감강찬이 페어스케이팅에서 올림픽 데뷔전을 치른 것도 한국 피겨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곳곳에서 새로운 싹을 틔웠다는 것만으로 즐거워해서는 안 된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김연아에 의존해 두 번의 올림픽에서 연속 메달을 획득했으나 평창에서는 '빈손'으로 돌아섰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동계올림픽의 꽃인 피겨스케이팅 시상대의 주인공은 러시아 출신 요정 알리나 자기토바, 순정만화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일본의 피겨킹 하뉴 유즈루가 차지해 '남의 잔치'가 됐다.



여자 싱글에서는 이미 국내 대회에서 최다빈과 김하늘을 압도하는 연기를 펼친 차세대 기대주 유영(과천중)이 활약하고 있어 2022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대하게 한다. 유영은 나이 제한으로 평창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영이 아직 발전할 여지가 많은 어린 선수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한국 피겨가 여전히 세계 수준과 격차를 보인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연아의 전성기 때와 달리 200점대가 흔해진 여자 싱글에서 아직 200점대를 돌파한 선수가 없다는 것은 그 격차를 드러내는 수치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의 집계에 따르면 200점대를 기록해 본 선수는 27명에 이르지만, 한국에서는 김연아 외에 그 명단에 포함된 선수가 없다.
남자 싱글에서도 차준환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뒤를 받쳐 줄 후계자가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고민거리다.
페어스케이팅과 아이스댄스로 눈을 돌리면 이런 고민은 더 깊어진다.
평창올림픽이라는 큰 잔치를 앞두고 지원이 늘어나면서 그나마 싹을 틔웠지만, 평창 이후에도 그런 지원이 이어질 수 있을지에는 물음표를 붙이는 이들이 많다.
민유라-겜린이 최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쏟아지는 후원금에 즐거워하고 있지만, 이는 외부의 지원 없이는 훈련을 이어가기도 버거운 이 종목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평창올림픽에서 피겨의 매력을 발견한 이들이 늘어나 저변 확대로 이어지기를 많은 팬과 빙상인들은 기대한다.
바람대로 '평창의 유산'이 실제로 주어진다면, 이를 지렛대 삼아 한국 피겨의 도약으로 이끌어야 할 주체는 지도자들과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될 것이다.
sncwoo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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