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러시아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입술 삐죽인 자기토바

입력 2018-02-23 21:04  

[올림픽] 러시아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입술 삐죽인 자기토바
피겨 여자 싱글서 첫 OAR 금메달 시상식…오륜기에 눈 못 마주쳐



(평창=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피겨퀸'의 자리를 차지한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 알리나 자기토바(15)는 러시아 국기 대신 올라가는 오륜기를 차마 자랑스럽게 응시하지 못했다.
평창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메달 시상식이 열린 23일 평창 메달플라자.
이날 낮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러시아 출신)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감격스러운 금메달을 차지한 자기토바는 경기 때와 달리 풀어헤친 머리를 찰랑거리며 시상식장에 입장해서는 환호하는 관객을 향해 환히 웃었다.
시상대 꼭대기에 서서 메달을 받을 때까지도 자기토바는 두 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등 꿈꾸던 올림픽 정상에 섰다는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국가 연주 순서가 되자 환하던 자기토바의 표정은 급속도로 굳었다.
러시아 국가 대신에 '올림픽 찬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국기게양대에는 금·은메달 자리에 러시아 국기 대신에 오륜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기토바는 올라가는 오륜기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단상 옆의 대형 스크린에는 올림픽 찬가가 울리는 내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눈동자를 굴리는 자기토바의 표정이 고스란히 잡혔다.
15세 소녀의 표정은 기분이 언짢다기보다는, 조국을 대표해 금메달을 따고도 국기를 보고 국가를 들을 수 없는 상황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는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올림픽 찬가 연주가 모두 끝나고 관중들이 갈채를 보내자, 자기토바는 슬며시 입술을 삐죽이고는 포즈를 요청하는 사진기자들 앞에서 그제야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기토바가 올림픽 찬가를 들어야 한 것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조직적인 도핑 스캔들을 일으킨 러시아에 평창올림픽 출전을 불허하고 선수들이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라는 개인 자격으로만 출전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유명 선수들이 출전 불허 결정을 받은 OAR는 메달을 휩쓸던 4년 전과 달리 평창올림픽 막바지인 이날 자기토바의 활약으로 겨우 첫 번째 금메달을 수확했다.
OAR의 첫 금메달인 만큼, 이날 메달 시상식에는 많은 러시아 매체 기자들이 몰려와 자기토바에게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를 요청했다.
오랫동안 러시아 매체들과 대화를 나눈 자기토바는 아시아인 기자들이 질문하려 하자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고는 다시 자신을 붙잡는 러시아 기자들과 한동안 기념촬영을 하고 믹스트존을 빠져나갔다.
sncwoo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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