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대로 미는 운동 비전 있겠나" 난색…의성은 컬링전용 경기장 건립
'팀 김' 올림픽 사상 첫 은메달로 세계적 컬링 도시로 우뚝…집중 조명
(의성=연합뉴스) 이승형 기자 = 2000년대 초 경북도체육회가 도내 시·군에 컬링 전용 경기장 건립 협조를 요청했을 때 모두 컬링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거듭 설명을 해도 "얼음 위에서 밀대로 미는 운동이 무슨 인기가 있겠느냐"며 난색을 보이며 손사래를 쳤으나 의성은 달랐다.
의성군도 흔쾌히 '오케이'한 것은 아니나 끈질긴 설득에 컬링 훈련장 필요성에 공감해 경북도체육회, 경북도와 함께 전용 경기장을 건립했다.
이곳에서 학창시절 방과 후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으로 컬링에 재미를 붙여 실력을 갈고닦은 여자컬링 대표팀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 세계적인 컬링 도시로 우뚝 섰다.
'안경 선배' 김은정 주장(스킵)이 이끄는 '팀 킴' 선수는 김초희를 뺀 주전 4명이 모두 의성여중·고 출신이다.
겨울 스포츠 불모지이던 경북도는 동계 종목을 위해 컬링을 선택하고 2001년 전국 최초로 컬링 직장운동경기부 남자팀을 창설했다.
컬링이 두뇌와 멘탈 경기로 한국인에게 적합하고 가족, 친구 등이 함께하는 팀워크가 중요한 스포츠로 한국 정서에도 맞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봤다.
또 스키나 빙상은 시설 투자에 많은 돈이 들고 기후상 경북에 확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팀을 창단하기는 했으나 비인기 종목의 장래는 암담하기만 했다.
선수들은 전용 훈련장이 없이 대구 실내빙상장에서 빙상선수 훈련이 끝나는 오후 10시나 11시부터 훈련에 들어가 다음 날 새벽 2∼3시까지 구슬땀을 흘리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비인기 종목이란 설움을 실감했다.
이에 경북도체육회와 경북컬링협회는 전용 훈련장 필요성을 절감했고 영천, 구미 등 도내 시·군에 컬링장 건립을 위한 협조를 부탁했다.
그러나 당시 어떤 종목인지도 알 수 없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컬링을 반기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김응삼 경북도체육회 체육진흥부장은 "경북컬링협회가 훈련 시설이 필요하다고 요청해 몇 개 시·군과 접촉했으나 당시 모두 컬링이 어떤 종목인지도 몰랐고 설명을 해도 돌을 굴리고 밀대로 미는 경기인데 비전이 있겠느냐는 식이었다"고 회상했다.
경북도체육회와 경북컬링협회는 마지막으로 의성군으로 눈길을 돌렸다.
의성 출신인 김경두 경북컬링협회 부회장이 중학교 시절 은사이던 당시 정해걸 의성군수를 찾아가 호소했고 캐나다 컬링장 실사 등을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훈련장 건립을 추진했다.
2003년 일본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경북도체육회 소속 남자 일반부가 우승을 차지하지 경기장 건립에 탄력이 붙어 같은 해 착공에 들어갔고 2006년 5월 의성군에 전국 최초로 국제경기규격을 갖춘 4시트 짜리 훈련원을 완공했다.
의성에 컬링장이 생기자 의성여고는 같은 해 컬링부를 만들었고 의성 각급 학교 학생은 동아리 활동으로 컬링에 재미를 붙였다.
대표팀 김은정·김영미 선수는 친구로 고등학교 1학년 때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했다.
김경애 선수는 언니인 김영미를 보러 컬링장에 갔다가 매력에 빠졌고 친구 김선영 선수도 한배를 타도록 했다.
이 같은 인프라와 선수 노력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이라는 결실을 보았고 인구 5만3천여명에 불과한 소도시 의성을 컬링 도시 대명사로 만들었다.
최재용 의성여고 교장은 "컬링부 학생들은 방과 후 활동으로 일주일에 3일 정도 컬링훈련원에서 땀을 흘리고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선수들이 연습이 없는 주말이나 휴일 컬링장에서 즐긴다"며 "이렇게 방과 후 활동이나 순수 동아리 활동으로 출발해 뛰어난 선수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경북도체육회도 경기장 준공 후 경북도청 컬링팀을 체육회 소속으로 변경해 2007년 남자부, 2010년 여자부 팀을 창단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학창시절 의성 전용 훈련원에서 컬링을 배운 선수들은 경북도체육회 소속으로 옮겨 대한민국 컬링을 이끌고 있고 여자팀은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경북에서 선수로 등록한 컬링 선수는 초·중·고등부와 일반부 54명이며 선수로 등록하지 않았으나 대회에 참가하는 이들까지 합하면 80명에 이른다.
의성군은 경기장에서 2016년 아시아태평양선수권대회를 연 것에 이어 지난해까지 2년 동안 모두 15개 국내외 대회를 유치해 우리나라 컬링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번에 선수 전원에 감독까지 성이 모두 김 씨인 '팀 킴'이 은메달을 차지해 세계적인 컬링 메카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h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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